시골에서 소녀는 도시로 동경하던 오빠를 찾아 그가 다니는 대학에 온다. 하지만 오빠는 물론 대학 사회의 사람들은 성욕에 사로잡혀 있고, 소녀는 대학에서 그들에게 휩싸여 많은 것을 겪은 후 실망감을 안고 다시 시골로 돌아간다. 이런 진부한 일본의 핑크 무비 스토리를 구로사와 기요시는 완전히 탈바꿈 해버린다. 핑크물로 공개될 수가 없던 이 영화는 재촬영 후에 공개되었고, 재편집된 영화는 진부한 스토리에 특이한 상상력(혹은 고다르의 모방)이 결합된 비상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안의 인물들은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보는 사람의 예측을 불허하는 행동을 하고, 진행되던 영화는 브라운관의 화면으로 지금까지의 내용을 설명하여 준다. 기요시의 영화광의 피가 끓어올라 만든 이 작품은 분명 작품의 완성도로 본다면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너무도 흥미진진하고 도전적인 재미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자신이 존경하는 고다르가 영국밴드 롤링 스톤즈의 자본을 가지고 락다큐를 찍는 척 하면서 자신의 영화 <1+1>을 완성한 것처럼 기요시는 이 작품으로 핑크물이라는 한계라는 테두리를 뛰어 넘어 그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 버렸다.
85년. 제목만으로도 심상치않은 느낌을 안겨주는 영화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가 발표되었다. 닛가츠 영화사의 로망 포르노로 제작되었으나 일반 극장에 붙이기 위하여 보충촬영과 재편집으로 누더기가 된 이 영화는 한 작가의 악전고투 속에서 탄생한 이상한 운명의 영화이다. 그러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든 영화이다.
'고다르'의 지가 베르토프 시절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다른 로망포르노의 자투리 필름과 홈 비디오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영화로 재편집한 작품이다. 그런 제작과정 때문인지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의 상상력은 마치 수공예품처럼 느껴진다. 이후 작업하는 35미리 영화에서의 기술적인 것보다는 모든 것을 8미리 시절의 상상력으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은 이 작품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에서 모두 시작된 것이다.
80년대 일본영화는 이 한편의 영화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다. 85년 이전에도 새로운 영화는 존재했으나 이만큼 신기하지는 않았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수많은 영화들을 무단 인용하는 영화광의 열정 위에서 '빌헬름 라이히'를 장난삼아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교묘하게 고다르의 과격한 정치적 형식주의를조잡한 스타일로 모방하면서도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80년대 일본 인디펜던트 영화계의 가장 자유분방한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의 전설은 이렇게 탄생한다. 과격한 영화광의 제멋대로의 실험 속에서 빚어진 기성의 가치로는 환원할 수 없는 활동사진적인 쾌감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하여 영화와 영화 사이를 바라보는 절대적인 영화체험들,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레미파 소녀의 피가 끓는다>는 단번에 영화광의 피가 끓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고다르'의 <원 플러스 원>을 참조하며 낯선 환영의 세계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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