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를 보러 갔습니다. 어떤 경위에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 머리 속에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가 재미 없는 영화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동행하지 않은 채, 혼자 보러 갔지요. 괜히 재미없는 영화를 다른 사람과,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보러간다면, 영화가 끝난 후 미안스러우니까요. 더욱 이상스러운 것은 재미없을 것이라는 각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회사를 마치고 영화관을 찾았답니다. 다른 분들도 느끼셨겠지만, 혼자 영화관을 찾는다는 것은 조금은 멋쩍기도 하지만 행복한 일이랍니다. 자리를 찾고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재미없을 것 같았던 영화가 과연 저의 눈에는, 저의 마음에는 어떻게 보여지고, 느껴졌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 너무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왜냐구요?

우선 소리가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대나무 숲에서 바람이 흩어지는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그리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끼어든 은수의 흥얼거림,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옛노래 가락들. 그 사랑스런 소리들을 담고 있는 이 영화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요?

물론 소리뿐만 아닙니다. 상우와 은수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상우역을 한 유지태, 저도 쪼잔하고 못난 남자인 관계로 저보다 키 크고 잘생긴 녀석은 싫어합니다. 그러니 제가 유지태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영애는요? 예상외로 이영애가 이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전 이영애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언젠가 이영애가 말을 하면서부터 싫어졌어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둘이 싫지 않더라구요. 착하고 순박하고 가슴 하구석이 비어있는 듯한 그의 표정이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은수(이영애)는 이해할 수 있는 미움이 지닌 여자라서 참 좋았습니다. 똑 까놓고 얘기하면 고년, 아주 X년이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이해는 되요. 말 그래도 사랑은 변하는 것이니까요. 두 배우가 좋아서 이 영화가 더욱 좋았답니다. 박인환씨와 신신애씨 역시 좋은 연기로 일조했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게 박수를 치는 이유는 바로 추억을 들춰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살면서 겪은 일들, 특히 사랑에 대한 아련하고, 아픈 기억을 이 영화가 되집어주는 것이지요. 물론 헤어진 사랑을 다시 생각하고, 돌이킨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제게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더군요. 제가 매조키스트라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 고통을 받으면서 저는 생각했답니다. 정말 올해의 봄날은 갔지만, 다시 내년의 봄날은 있으니까요. 추억한다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보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니까요.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좋습니다.
끝으로 상우의 대사에 딴지를 걸어봅니다. 상우왈, 사랑이 변하니?

예,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랑은 반드시 변합니다. 하지만 변하고 안변하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어떻게 변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사랑이 증오로 변한다면 슬픔이지만, 사랑이 사라져버린다면 아픔이지만, 사랑이 행복으로 아니면 편안함으로 변한다면 결코 슬픈 일만은 아닐테니까요.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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