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905년부터 "오렌지"라는 작전 명으로 태평양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경우 태평양 연안 안에서 모든 전투를 끝낼 계획 이였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은 미국의 그러한 오래된 작전 관습을 깨버리는 대규모 기습 공격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영화 "진주만"은 꽤 역사적 사실성에 집중한 흔적을 받는다. 물론 그것이 "도라 도라 도라"만큼의 리얼리티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몇 가지 픽션만 덧붙이는 한도 안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인정받는 위치까지는 도달한 셈이다. 과장되게도 "마이클 베이"는 그런 면에서 (아마도 시각적인 환타지였겠지만) 충실한 애국자의 도리를 다 한 듯 보인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헐리웃에서도 으뜸가는 흥행감독이라는 점이다. 그는 여기서부터 자신의 본분을 알았던 것일게다. 래프 맥콜레이(벤 애플렉)와 대니 워커(조쉬 하트넷)의 어린 시절은 미국식 영웅들의 후일담이 다 그렇듯 꿈을 키워 가는 놀라운 마린보이들이 등장한다. "스페이스 잼"의 조단의 어린 시절처럼 말이다. 물론 어김없이 대사도 똑같다. 'I believe, I can fly.' 하지만 매몰차게도 두 마린보이의 꿈은 라이트 형제의 후예로서 하늘을 단지 난다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라는 위험천만하고도 그 무엇(전쟁)을 수반해야만 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다시 말해 이것은 너희들은 전쟁을 맞이해야 될 세대이니까 동심으로 돌아가는 유치한 꿈은 집어치우라는 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래프가 영국의 '독수리대대'에 참전하는 계기도 한가지 어긋나는 사실이 있으니 '독수리대대'는 미국의 민간인들로 구성된 비행대대였다는 점이다. 래프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미조종사 시험에 에블린 존슨(케이트 베킨세일)의 눈치코치 작전으로 어영부영 합격한 후 대위의 자격으로 '독수리대대'에 참전한다는 사실은 정말 눈물겨우며 드라마틱한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수리대대'의 민간조종사들은 대부분이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조종사 시험에 불합격 한 후 모인 이들이 대부분 이였으니 말이다. 역사는 그렇게 치사하고도 자질구레하게 영화를 위해서 자신의 이름을 헌납하길 진정으로 원했던 것일까. 거기까지는 우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겠다 싶다. 각본을 맡았던 '랜달 월레스'를 들들 볶고 따져 물을 계제니까 말이다. 이미 영화 "아이언 마스크"에서 삼총사의 후속격인 <10년후>를 홀라당 벗겨다 먹은 이력을 지닌 그였으니 따로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때는 그가 감독이였다는 사실을 염두해 둔다면 참으로 재미있는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영화에서 그는 사랑얘기로 너저분하게 영화를 치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긴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들이고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을 테니까 요리조리 관객의 심사를 주판알 튕기듯 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주만은 근본적으로 사회사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영화는 아니다. 조국을 위해 충정을 바친다는 일개 얄팍한 '성조기여 영원하라'식의 국수주의적 발상을 외쳐 부를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가 인정하는 미국이 세계화의 근간임을 부르짖기에는 어려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결말부로 흐르면서 느닷없는 튀어나오는 루즈벨트의 반격이란 작전은 엉뚱하기 그지없는 시나리오의 총체적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말 그대로 유치뽕 이였다. 전쟁영화에서 영웅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지만 그렇게까지 굶주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저 삼각관계에서 엉뚱하게 뛰어들었던 한 놈을 퇴치하는 방법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리어 역겨웠던 40분간의 폭격장면의 "불놀이야!"를 무력하게 만드는 어이없음의 이유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진주만은 다 녹아버린 초콜릿 상자를 안고 즐거워하는 발렌타인데이의 상처(喪妻)한 남자에게나 어울리는 심리스릴러인 것이 분명하다. 적도에 서 있는 하와이에서 일본인들의 야리한 상술로 만들어 낸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이라니....차라리 찹쌀떡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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