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한 남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에드라 불리우는 이 남자는, 자신을 도리스의 남편이고, 결혼함과 동시에 유니폼을 입는 이발사가 되었다고 나레이션을 통해 말하고 있지만, 이것이 본인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였고, 어쩌다 보니 이발사가 되었고, 또 어쩌다 보니 살인을 저질렀을 뿐이다. 영화에서 그것이 본인의 의지였는지, 왜 그랬는지에 대한 진실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건, 살인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관점들이다.

* 그 남자는 누구인가

영화는 나른한 슬로우 모션과 나레이션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그 남자'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그 남자는 어디에서 살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카메라는 천천히 그 인물의 주변을 보여준다. 그러나 건조하고 무표정한 얼굴의 그 남자에게서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인물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 혹은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 남자에게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되묻지만,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영화가 끝나가도록 찾을 수 없다.

그 해답은 변호사인 슈나이더가 궤변처럼 늘어놓는 복잡한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개입으로 현상과 진실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이라고 슈나이더는 설명한다. 인간의 관찰 행위 자체가 현상을 변화시키므로,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 타인에 의해 인물에 의한 정의가 내려지고 판단되어 지기 때문에, 주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 상대적으로 타인 의해 결정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체이고, 영화속 인물 에드이다.

* 그 남자는 어디에 있는가

무료한 생활을 하던 '그 남자' 이발사 에드는 의도하지 않게 친구인 빅 데이브를 살해하게 된다. 그는 살해 현장에 분명히 있었지만, 그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남자의 알라바이는 증발해버렸다. 사건의 진실은 사라지고, 그에 대한 무수히 많은 해석들이 떠돌아 다닌다. 빅 데이브의 아내는 외계인과 관련된 정부의 음모라고 생각하고, 변호사인 슈나이더는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지식을 이용해 도리스의 무죄를 밝히려 한다. 에드가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실을 말해도, 평범한 이발사가 하는 말은 힘을 얻지 못한다.

도리스의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싶더니, 에드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에 대한 처벌로 감옥에 갇힌다. 갑자기 사태는 바뀌어서 비난을 받던 도리스는 성녀가 된다. 무수히 많은 담론들 중 불변의 절대적인 담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힘의 논리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담론의 질서이다.

영화의 법정은 현실에서 돌아다니는 담론의 관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변호사와 검사는 대립되는 의견을 가지고, 그들의 의견을 주장한다. 이때 배심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슈나이더 같은 지식과 권력이다. 결국 어느 한쪽의 담론이 승소를 하고, 그것이 진실이고 진리인 것처럼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들이게 된다.

* 그렇다면, 처음에 문제제기 했던 '그 남자는 어디에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그 남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 결론을 지어야 할 것인가.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의 에드는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현실의 우리 모습과 닮아있다. 어딘가를 응시하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빌리 밥 손튼'의 시선은 우리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것은 서글프지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의 건조하고 무표정한 표정 연기는 세상 담론의 흐름대로 떠돌아다니기만 하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동적이기만 한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에드는 무엇인가를 찾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버디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가고, 그녀에게 유명한 강사를 소개시켜주려 노력하기도 하고, 재능이 없다는 전문가의 말에 화를 내기도 한다. 그가 찾는 것이 피아노를 치는 버디인지, 버디의 성공인지, 아니면 피아노 소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그는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글로 쓴다. 영화에서의 나레이션은 그가 쓴 글이었음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밝혀진다. 영화 속 현실과 그가 쓴 글들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회고하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수동적으로 설정되어지는 주체가 아닌, 비록 제한되고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찾아가는 그런 능동성을 가진 주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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