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중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니 중독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독 된 사람들의 넋을 달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관객들 중독 시킨다. 반복과 변주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사라는 초콜릿과 텔레비전과 다이어트와 약물에 중독 되어있다.
해리는 마약과 여자에 중독 되어있다.
매리언은 마약과 섹스에 중독 되어있다.
타이론은 마약에 중독 되어있다.

모두들 중독 되어있다. 이 영화 속에서 중독은 일상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중독자이다. 주인공 사라는 복합적인 중독에서부터 그리고 심지어 단역들까지도. (심지어 일광욕에 중독 된 아줌마들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중독과 환각이 즐겁지만은 안다. 감독인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중독의 진행 과정에 대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결론 내린다.

이 영화는 쉽게 1년의 시간을 연대기식으로 풀고 있다. 봄날에서 여름 그리고 가을을 거쳐 혹독한 겨울로 그리고 다시 봄의 징후를 보여주는 곳까지. 중독은 바로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따뜻하게 찾아오고, 활동적으로 만들다가, 점점 지고 혹독함을 준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음 해를 맞이하기도 하고, 한해를 끝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 영화가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도출하는 눈, 큰 것을 아주 섬세하지만 작은 것으로 표현하는 능력, 그것이 필자를 즐겁게 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계절이라는 배경, 그리고 중독이라는 소재를 절묘하게 매치시켰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메타포는 이미 문학이나 기타 예술에서 흔한 것이지만, 대론은 대론스럽게 엮어냈다. 그의 연출은 다소 과장되어 있고, 정신없지만 그것은 오히려 중독이라는 소재에 잘 부합하는 표현법으로 보인다. 그가 보여주는 화면 분할(마이크 피기스의 그것보다는 덜 현란하지만)이나 소위 말하는 ‘힙합 몽타쥬’ 그리고 매튜 리바티크의 음악은 말 그래도 중독성이 강하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지만, 나중에는 그것들이 영화 속에서 빨리 나와 주길 기다리게 된다. 결국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형식과 내용을 잘 접목했다고 할 수 있다.(모든 예술가가 원하는 바, 형식과 내용의 적확한 접목!)

한술 더 떠, 이 영화의 연출이나 음악만큼 연기도 대단하다 주연급 배우 한명 한명이 모두 대단한 연기를 보인다. 우선 사라역의 엘렌 버스틴은 여기서 해리의 어머니이자, 미망인으로 등장하는데, 극중에서 가장 많은 중독자이다. 이것은 바로 가장 많은 나이이고 가장 힘든 삶을 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연기는 과히 병적인데, 텔레비전에 중독 되어 있는 그의 눈빛이나, 다이어트 약을 먹으려는 모습 그리고 텔레비전 출연에 대한 집착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냉장고를 보고 두려워하는 표정 등. 오스카상 수상자임에 손색이 없다.

다음은 자레드 레토. 최근에 <패닉 룸>에서 변덕 심한 상속자로 나와, 패닉 룸 범죄에 사람들을 동참시키지만 위험을 느껴지자, 살고 싶어 나가다가 죽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거기서 역시 짜증스런 캐릭터를 정말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나도록 잘 연기한다. <레퀴엠>에선 빛나는 것은 중독 된 그의 휭한 눈이다. 휭한 눈과 상처 입은 팔목을 보고 그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이다. 제니퍼 코넬리 역시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를 벗고 중독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해리의 연인에서부터 마약을 위해 몸을 내주는 창부까지. 매혹적으로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타이론역의 마론 웨이언스인데, 마론은 <무서운 영화>에서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진지하고 불쌍한 중독자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레퀴엠>에 등장한 4명의 배우들은 기존 색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색으로 관객들 앞에 선다. 마치 카멜레온 마냥.

‘중독’이라는 자극적인 주제를 ‘중독’될만한 영상과 소리로 연기에 ‘중독’된 듯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레퀴엠>에 어찌 ‘중독’ 안될 수 있겠는가?

반쯤 닫혀 진 결말 역시 마음에 든다. 중독 된 자들이 과연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직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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