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사람들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도 어디에선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동물이나 식물 등의 다른 것으로 환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또한 한다. 2001년 봄에 개봉한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한국영화에서도 소울메이트라는 정신적 환생의 개념을 도입하여 사랑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본적이 있다.

한국에서 10월5일 개봉하는 <비밀>이라는 일본영화는 그러한 모티브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제목으로 2000년에 개봉한 김승우 주연의 <비밀>이 있다. 1999년 일본에서 개봉한 <비밀>은 1998년 발간하여 25만 부나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소설을 기초로 두고 있다. 아내와 외동딸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하던 스기타 헤이스케, 아내와 딸이 스키여행을 가려고 탔던 버스가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해 추락사를 당하고 아내 나오코는 운명을 달리하고 다행이 딸 모나미는 살아난다. 하지만 아내는 딸의 몸을 빌려 살아난 것이고 육체는 딸이지만 정신은 아내로서 남편과 살아가면서 겪는 혼란스러운 해프닝을 주요골자로 삼고 있다.

원작소설의 발간 초기부터 이미 30개를 넘는 영화기획이 출판사에 쇄도할 정도로 이 작품에 인기는 실로 압도적이다. 초기에는 배우로써 활동하고, 코미디부터 매우 진지한 작품까지 폭 넓은 연출력을 선보인 타키다 요지로가 메가폰을 잡았고, 영화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스타인 히로스에 료코가 아내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딸역을 맡아 1980년 생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연기력을 구사한다. 아마도 이 영화의 핵은 그녀의 이중인격의 연기력에서 그 매력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로스에 료코는 이 작품으로 일본영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스페인 슈체스카타루나 국제영화제와 바르셀로나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남편 역을 맡은 코바야시 카오루는 일본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서 더빙을 맡았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혼란스러우면서도 미묘한 현실적 대립갈등의 남편역할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

영화초반에 부인은 일시적으로 의식을 되찾더니 남편에게 딸의 손을 자기에게 쥐어줄 것을 부탁한 후 숨을 거둔다. 마침내 의식을 차린 딸은 '아빠'가 아닌 '헤이짱'이라는 자기들만의 애칭으로 부른다. 마치 나오코의 영혼이 나오미에게 이식된 것처럼 17살 딸아이의 육체에 40대 부인의 영혼이 전이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한 동거설정은 '번지점프하다'에서의 동성애와 비슷하게 근친상간이라는 다소 금지된 이루어질 수 없는 위험한 딜레마의 상태로 빠지게 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하는 심리전을 펼치게 한다. 영화는 다소 몰입적이고 흥분감을 수반한다. 도박에서 주사위를 던져 어떤 숫자가 나올지 애가 타듯 영화는 시종일관 우리의 선택을 요구한다. 둘만의 가정이라는 공간에서는 부부로, 외부에서는 부녀로 행세하기로 하지만 그 또한 모순된 형태로 나타난다. 부녀가 아닌 부부임에도 내부에서는 불안전한 형태로 미숙아의 모습을 뛰게 되고, 외부에서는 부녀지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짜 부녀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컬한 모습도 비쳐준다. 영화중반에서 술기운에 젖은 그들은 '부부관계'를 시도하지만 딸의 얼굴을 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불가능한 숙제로 남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서 딸 나오미와 부인 나오코가 번갈아 가면서 영혼이 뒤바꿔지는 모습은 영원히 매듭으로 이어진 가족의 레테고리를 눈물겹게 보여준다. 꼭 뫼비우스의 띠처럼 변할 수 없고, 계속 이어지는 영원한 사랑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선다. 작년에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도 개봉 전후로 동성애와 소울메이트라는 주제로 많은 말들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비밀'도 한국에서 개봉되면 논란의 여지가 많다. 동성애 대신 근친상간이라는 조금은 반윤리적인 문제로 부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비밀>은 영화 상영내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는 없다. 도리어 안타까움과 현실의 제약성을 느끼게 한다. 원작의 탄탄한 구성, 세밀한 감독의 연출과 철도원에서 좋은 딸 연기를 보여주었던 히로스에 료코를 비롯한 배우들의 우수한 연기가 어울러져 영화는 우리들에게 눈물이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일본영화에서 느껴지는 황당한 코미디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우리와의 정서적인 차이도 그다지 깊게 느껴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다른 어떤 사물을 빌려 다시 환생한다는 빙의 증세나 소울메이트등이 영화의 요소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데서 오는 원초적인 발상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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