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주가 있다. 당태종의 공주라고 하는데 그건 확인이 안되서 잘모르겠고 하여튼 공주가 있었단다. 어느 평범한 농부였는지 하여튼 왕자쯤이 되지 않는 녀석이 가당치도 않게 그 공주를 사모했었다. 대부분 여기서 상사병을 앓다 그만두거나 하는데 그게 과했던지 왕의 귀에 그 사실이 들어갔고 열받은 왕은 그를 죽였단다.

그가 어찌되었는가? 그는 죽은 후에 뱀이 되어서 공주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단다. 공주가 굶어죽게 이르게 되자 극동의 한반도 땅 청평사로 가면 된다고 누군가 알려주었다고 한다. 거기서 밥을 가지러 들어간 공주는 뱀을 놓아두고 청평사에서 안나왔단다. 열받은 뱀이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나 뱀은 천둥에 맞아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여튼 공주에게로의 짝사랑은 끝이 나버린다. (이게 상우가 경수에게 말한 청평사 회전문에 얽힌 전설의 내마음대로 버전이다. ^^;;)

1. 실감과 감은 같지 않다.

극 중에 경수는 동네 할아버지가 딴 감을 한개 얻어 실을 몇올 감은 채로 '등호(=)'에 '사선(/)'을 그어 같지 않음을 표시한 후에 자신과 동침한 선영의 편지를 붙인다. 이 게시물을 통해서 그는 선영의 남편에게 선영이 결코 정절을 생각하는 유부녀라기 보다는 한사람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여인네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과 동침했다는 사실을 알리려한다.

실감, 즉 진짜 세계(real world)에서의 그녀와
감(感), 즉 가상 세계(cyber world)에서의 그녀는
완전히 다르다.

이 자보는 영화 전체의 테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부녀인 선영은 느닷없이 경수에게 인사를 한다. 잘나가는 연극배우지만 영화진출에 실패한 경수는 이 느닷없는 팬에게 수작을 부려볼 심사로 맥주마시기를 제안하지만 그녀는 거절한다. 그러나 결코 선영은 경수에게 호감이 없지 않다. 결국 그녀의 고난이도 수작에 경수는 넘어가고 부산으로 가는 길을 돌려 경주에 내려앉게 된다.

선영은 경수가 춘천에서 만난 명숙과 다르게 보여지는 모습은 새침떼기이나 실제 모습은 욕망에 충실한 여인이다. 명숙은 겉으로는 욕망에 충실한 여인이나 실제로는 하룻밤 잠자리 상대의 떠남을 위해 밤새 우는 여자이다. 그러나 이 두 여자 둘다 뭔가 이상하다. 그것은 이 여자가 속해 있는 세계가 실제 세계가 아니라는 인식을 할 때 가능하다.

실감이라는 것은 그저 있는 '사물'과 다르게 우리가 '느끼'는 것이다. 2차적인 것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무리 현실과 '닮아' 있다고 그래도 '현실'은 '엄존'한다.

2. 회전문

선영은 점을 보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남편에 대한 걱정을 한다. 그녀는 남편의 사주를 보고 좋은 운수라 좋아한다. 그런 선영을 보며 승려사주인 경수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선영이가 결코 자신의 곁으로 오지 않음을 보고 경수는 사랑인지 무언지 모를 감정에 더욱 매몰되게 된다. 그는 선영이에게 같이 떠날 것을 종용하지만 선영은 관심이 없다. 아마도 경수 역시 선영이 나서자 했으면 그럴 제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영화 전체에 흐르고 있는 사랑이라는 테마는 경수의 극중 대사처럼 '조금 많이 좋아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잠시 앞에 언급한 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뱀으로 변한 사내가 진정 공주를 사랑했을까? 조금 많이 좋아한거지 진정 사랑한 것일까?

3. 경주와 춘천

대학을 들어오거나 사회에 나가게 되면 학창시절이라는 것은 이제 '환상' 속으로 기어들게 된다. 그런 학창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수학여행지일 것이다. 하지만 개그는 개그일뿐이고 수학여행지는 단지 수학'여행'지일 뿐이다.

선영이 경주에 살고 있다는 것, 모두가 여행지로 알고 있는 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경수와 선영의 관계를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영은 잡히지 않는 환상 속에 있는 학창시절처럼 현실과 떨어져서는 존재할지 모르나 실제 '경주'에 사는 선영 전체가 경수의 현실로 녹아들 수는 없다. 그것을 경수는 잘안다. 뱀은 회전문 앞에서 돌아간다.

청평사로 올라가는 배는 춘천에 가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보게 된다. 하지만 그 배 선착장에서 늘 망설이게 될 뿐이다. 홍상수는 그러한 망설임을 잘 잡아낸다. 설혹 그 배를 타더래도 청평사에 가지는 않는다.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음.. 생활의 발견, 진짜 생활의 발견은,
그놈(오리배)은 왼갖 군데에 다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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