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폐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월드컵의 전세계적인 화제거리는 단연 '대~한민국'팀의 선전이다. 히딩크와 몇몇 예언가들, 그리고 한국축구팬들만 예상하고 있었던 한국팀의 성공이 실현되자 이에 넉아웃당한 유럽팀들은 예의 지리한 심판 판정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의 승리를 깍아내렸다. 폴란드와 포르투갈이 한국팀에 경의를 표한 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깡패처럼 달려들었다. 이들이 그렇게 공정성 문제를 제기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유럽 중에서도 특히 축구에 미친 나라다. 정치인들은 축구를 무기로 선거에 당선되기도 하고, 유럽통합 시대에 민족주의를 정당한 방법으로 허용하는 축구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단합시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국팀이 약하다는 것은 현 정권의 무능과 패배주의를 뜻하기까지 한다.

유럽팀들의 심판판정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당국의 언론들에 의해 비롯되었다. 혹자는 개최국인 한국이 심판을 매수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국가는 FIFA를 제소하겠다고까지 한다. 솔직히 난 FIFA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심판 문제에 이렇게 치사하게 나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언론을 위해서라도 제발 해당언론은 축구전문가들과 함께 비디오 화면을 자세하게 봐주길 촉구하는 바이다.

이탈리아의 트라파토니 감독은 지난 98 프랑스 월드컵 때에도 심판의 편파판정이라며 날뛰었고, 스페인은 지난 2000 유럽챔피언스컵에서도 심판이 상대편 팀이라며 억지를 부렸다. 한마디로 말해 그들은 늘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다음날이 되면 다 잊어버린다. 괜히 그런 언론플레이에 마음 쓰는 우리만 패배주의에 젖어들어 바보가 되는 것이다. 승리를 즐기자. 우리의 축구는 더러운 축구에 맞서 깨끗한 축구를 보여주었다. 우리를 비웃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중국에 대해 한 번 씨익 비웃어주자. 억울하면 그대들도 월드컵 개최하면 될 것 아닌가. 우리가 이번 월드컵으로 얻은 최대 성과는 자부심이다. 몇몇 비열한 언론플레이에 소중한 결과를 빼앗기지 말자. 그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월드컵에 소외되어 있던 노동자들, 장애인들, 미군 탱크에 살해당한 두 여중생은 더 슬플 것이다.

이번 월드컵의 한국선수들은 반칙이 뭔지 모르는 해맑은 아이들처럼 열심히 뛰었다. 저 월드컵 우승후보 브라질의 히바우두가 우승에 눈이 멀어 수시로 넘어지고 엄살부릴 때, 저 미남 스타 잉글랜드의 베컴이 페널티 지역 안에서 혼자 두바퀴 구르면서 심판을 향해 손을 벌릴 때, 비에리의 헤비급 옆구리치기와 살짝 건드려도 픽픽 쓰러지는 일사병 환자같은 스페인 선수들을 맞아 우리 선수들은 도대체 쓰러질 줄을 모르는 전사처럼 넘어지면 바로 일어나서 침착하게 달렸다.

아마도 한국팀의 이러한 페어플레이가 없었다면, 이번 한일월드컵은 심판과 선수들간의 치열한 속고속이기의 더러운 월드컵으로 기록되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 승리와 열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한 남자가 있다. 가난을 피하기 위해 맨주먹으로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권투를 시작한 이 남자의 이름은 '개득구.' 다른 모든 '개'씨 성을 가진 사람과 형제가 될 수 있는 이 남자는 70년대 우리사회 가난의 표상 같은 인물이다.

곽경택 감독의 신작 <챔피언> 기자시사회가 월드컵 한-독전을 하루 앞둔 24일에 있었다. 그동안 많은 기대를 받아온 작품이니만큼 곽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CG를 보강하기 위해 첫 언론공개를 연기하면서까지 정성을 들였다. 영화가 끝난 후의 소감이라면 한 마디로 이렇다. <친구> 보다 더 낫다!

7,80년대를 재현하는데 이제 곽 감독 만한 인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한 이야기를 서민적인 감성으로, 이야기에 짜임새를 더해가며 만들 줄 아는 능력이 이제 곽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줄곧 한 인물의 성공담과 갑작스런 죽음으로 막을 내린 이 영화는 비록 김득구가 죽은 이후의 상황에서 다소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마지막 장면의 방황을 비판하기에는 사실 그 장면이 너무 멋지다. 내가 감독이었더라도 그런 멋진 화면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영화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논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장면일지라도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권투중계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울려퍼지는 행진곡풍의 음악이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크레센도로 깔리면서 지금은 어두워진 체육관에 선수들이 들어서고 불이 밝아온다. 차라리 어둑해진 체육관 화면에 들어서는 아이의 모습을 영화의 첫머리에도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좀더 완벽한 액자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유오성의 연기는 그가 대사를 할 때 더 빛난다. 마치 실제의 김득구도 그렇게 어쭙잖은 표정을 지었을 것 같다. 신인 채민서는 무리없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지금 SBS 축구중계를 하는 송재익 캐스터가 다소 젊어진(?) 모습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데 필자는 당시에 그 중계를 볼 만큼 나이들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어찌나 지금 축구중계하는 것과 비슷한지! 송재익에게 스포츠의 벽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축구중계는 최악이다. 차라리 그냥 권투중계만 계속했으면 좋겠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는 <취화선>을 제외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나기 참 힘들었다. 그래서 <챔피언>이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울러 역시 영화도 대박을 만들어본 사람이 더 잘 찍는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마치 전통의 축구강호인 독일과 브라질이 월드컵 시작 전에 사상 최약체라고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에서 만난 것처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언제나 다크호스를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깨끗한 플레이로 성원을 받은 한국팀처럼 거침없는 능력만 있는 신인들이 올 하반기 한국영화의 부흥을 위해 지금도 체력훈련을 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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