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미끄러져가는 혼돈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은? 자신이 합리적, 객관적이라 믿는 사유의 틀을 그 근본에서부터 의심하는 것이다. 적어도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영화 디 아더스에서 파놓은 교묘한 함정을 피해갈려면 말이다. 만약 자신의 사고에 대해 믿음이 강한 자존파라면 영화 <디 아더스>의 반전을 예측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게 편할 것이다.

주인공으로 니콜 키드만을 캐스팅한 감독의 선택이 탁월하다. 명석함을 발하는 또릿또릿한 눈망울과 뚜렷한 이목구비에서 배어나오는 지적 가능성과 빼어난 연기력은 관객을 함정으로 유인하는 훌륭한 미끼이다. 그녀가 아름다운 아미를 찡그리며 갑자기 자신의 삶의 영역에 침투한 보이지 않는 존재로 고민하고 괴로와할 때 기꺼이 그 문제에 동참하지 않을 남성관객은 없을터!! 그녀와 함께 우리와 다른 존재, 타인들에 대한 본능적인 적의와 공포를 키워갈 수밖에 없는 관객들을 향해 애도를 표한다. 만약 니콜 키드만의 지성적 외모와 연기에 의해 가려진 우리(We)와 타인들(the others)에 대한 생각의 오류를 파악하는 자가 있다면 내 기꺼이 밥 한끼 거하게 사련다.

그녀의 유혹을 이겨낸다해도 그의 계략이 횡행하는 감독의 홈그라운드 져지섬의 잇점을 극복하기는 무척 힘들다. 외부와 단절된 져지섬에 홀로 우뚝 서있는 고딕양식의 저택을 보는 것만으로도 타인들에 대한 공포가 우리 내면에서 싹이 튼다. 웃.. 니콜 키드만이 자녀의 병(?)을 막기 위해 사랑으로 쳐놓은 커튼으로 공간마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기면 장난아니다.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는 음산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은 마치 굉음으로 환호하는 울트라 닛뽄처럼 관객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주변에서 맴돌며 기분나쁜 시선을 느끼게 하는 것처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 타인들을 본 딸의 조악한 그림을 통해 타인들의 이미지는 유령으로 구체화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또한 관객인 우리가 함께 체험하는 공포의 근원은 우리의 삶에 우리의 허락없이 끼어든 그 타인들(the others)의 존재 그 자체이다. 실제로 육체적 고통이나 피살될 구체적 위험을 받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그들이 내는 소리에 눈을 치켜뜨고 공격적인 대응을 한다. 단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들로 인해 내가 우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변화해야하는 사실에 그 공포가 존재하는게 아닐까? 더구나 그것이 자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마주하기 싫은 진실과 연관이 있을때는 그 공포가 끝을 알 수 없을테지..

타인들에 대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가 바로 감독이 우리를 현혹하는 강력한 무기에 다름아니다. 간악한 감독을 무장해제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와 타인들,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인식의 틀을 뜯어고치는 방법밖에 없다. 그들이 나에게 타인이듯이 나 또한 그들에게 타인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감독이 설치한 장치에 마구 휘둘리다가 반전에 이르러서 넋을 잃을 수 밖에..

지금껏 보아온 스릴러, 공포 영화를 보며 길들어진 나는 우리가 아닌 타인들(the others)의 범주에 광기어린 사이코나 저주받은 영혼, 귀신 같은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를 상정하기가 어려웠다. 고작해야 외계인을 더 추가하는 정도?. 마땅히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을 공유하며 비슷한 사고와 비슷한 신체적 조건의 소유자 - 즉 우리(We)라는 범주에 속한 인물일거라는 믿음 또한 절대적이었는데.. 그랬는데 말이다.. 보기좋게 당했다. -.-;;

이 영화를 꼭 봐야할 사람이 있다. 요즘 대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세계의 평화와 자유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엽기스런 골통 조지 부시 대통령말이다. 신자유주의가 오직 살길이라 강요하면서 제 3세계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가는 괴물과도 같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체 그에 저항하는 집단을 타인들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그 오만한 생각의 오류를 뿌리부터 바뀌게 할 역사의 반전은 언제쯤 일어날지 참으로 안타깝다. 오사마 빈 라덴은 실패했고, 과연 누가 그런 시나리오를 다시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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