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미등이 꺼지길 기다린다.
드디어...
거대한 붓 한 자루가 스크린을 먹어치운다.

서편제, 춘향뎐 그리고 취화선.
내가 본 임권택 감독의 작품들이다.

중학교땐가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서편제는 뭣도 모르는 나의 어린 눈시울도 적실 만큼 감동적이었었다. 어린 마음에도 소화의 '한' 이란 것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춘향뎐'. 그 때의 실망감이란...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향뎐에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칸 진출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판소리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 뮤직비디오를 찍은 느낌이랄까... 배우들의 연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영상과 소리만이 스크린 위에서 유영할 뿐이었다.

이번에 다시 '취화선'.

'그림' '끝없는 방랑'

그림이 주인공인 영화.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수확이다. 그림과 더불어 또 하나의 다른 그림은 바로 우리나라의 자연산수다. 전국 방방곡곡(?) 아름다운 산수를 담은 영상은 그야말로 절로 탄성이 나오게 만든다.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특히 오원의 길고 긴 방랑길에서 드넓은 평지를 지나가던 중 바라본, 새들이 흩뿌려진 하늘 장면에선 그 아름다움에 한숨마저 나왔다.

예술가에게 있어 만족이란 없는 것인가? 끝없는 방랑. 그것이 예술가의 업보인가?
왕실화공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 나이 들어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는 안정된 곳에서도 다시 짐을 싸는 그..그를 붙들어 맬 수 있는 것은 무얼까? 편안히 살 수 있는 데도 자꾸만 보따리를 싸게 만드는 그게 무엇이길래..그것이 무언지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 예술가란 존재가 아닐런지.

그리 수작은 아니라 생각이 드는 이 영화가 어떻게 칸에 까지 갈 수 있었을까?
아마도 '외국인'이라는 파란눈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좀 색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다도, 기생방 등 한국 특유의 색깔이 진하게 베어 있기에 스토리의 전개나 편집이 레코드판의 튀는 소리처럼 거슬림에도 불구하고 칸에 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스트 씬...
오원이 시뻘겋게 타오르는 가마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 절을 하듯 엎드려 숨을 죽인다...
그대로 사그러 들어 혼으로 피어오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문화, 전통이 그의 혼처럼 아름답게 타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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