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아를 아는가. 제목부터 아리송한 이 영화는 지명 또한 생경한 그 곳, 그루지아에서 날아 왔다. 월식이 두 번이나 있었던 어느 여름, 삐걱대는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올라야 모습을 드러내는 자그마한 마을, 시공간적 배경마저 심상치 않은 이 영화의 첫인상은 그렇게 낯설고 기묘한 느낌이었다.

시빌이 도착한 이상한 나라에는 항시 포연이 자욱하고, 그 위협적인 포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도 자욱하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인지, 축제를 벌이고 있는 중인지 도통 구별해낼 수 없는 마을의 배경은 그 자체로 영화의 '이중적인' 주제를 잘 드러낸다. <못다한 27번의 키스>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빌어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을에 드리워진 보얀 연기를 한 꺼풀 벗겨보면 그 이면의 삶을 발견할 수 있는 법. 영화는 '시빌'을 매개로 시골마을의 순수하고 도덕적인 외양에 억눌려 은밀하게 소용돌이치던 욕망을 끄집어낸다. 시빌은 이방인으로서 마을의 외면과 내면을, 사춘기 소녀로서 아이와 어른의 세계를 동시에 관찰하며 능란하게 넘나드는 시각을 획득한다. 이러한 시빌의 역할은 14살의 그녀가 41살의 알렉산드르를 사랑하고, 알렉산드르의 아들 미키가 시빌을 사랑하게 되는 삼각관계의 구도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알렉산드르는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해 별을 관찰하며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을의 유부녀들과 빠짐없이 불륜 행각을 벌이는, '이상한 마을'의 모순과 가장 닮아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모습은 어쩌면 세상에 익숙한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 자체일 것이다. 이에 반해 미키는 내면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순수하고 일치된 인간의 모습이다. 영화는 알렉산드르보다는 어리고, 미키보다는 성숙한 시빌의 관점을 통해 욕망과 표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마을에 처음으로 <엠마뉴엘>이 상영되자,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고 유쾌한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솟구친다. <엠마뉴엘>의 상영은 마을의, 혹은 삶의 공공연한 비밀과도 같았던 욕망의 모순을 표면으로 떠올려 가시화하는 계기로써 작용한다. 물론 다독여졌던 욕망의 꿈틀거림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하다. 피에르는 자신의 성기에 볼 베어링을 끼우고, 추호의 의심 없이 마을 도덕의 최고 권위자였던 교장 선생님이 자기 아내 아닌 다른 여자의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마을이 온통 뒤숭숭한 이 때도 <엠마뉴엘>의 은막 뒤에서 시빌과 미키가 뒤집어진 영화와 마을 사람들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왁자하게 거꾸러진 현실 속에서도 '희망'이 등장한다. 증발한 바다를 찾아 다시 배를 띄우기 위해, 녹슨 배를 끌고 휘적휘적 나타난 늙은 선장. 그가 잃어버린 고양이처럼 우리는 현실과 꿈 사이의 통로인 영묘한 주술을 잃어버렸다. 그의 배처럼 우리의 꿈은 벌겋게 녹이 슬고 그의 머리칼처럼 허옇게 새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꿈을 띄울 바다는 정녕 홀연히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아직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바로 혼란한 삶을 지탱해주는 희망이라고 영화는 나직이 속삭인다.

<못다한 27번의 키스>는 동화처럼 신비로운 한 폭의 이미지 속에 날카로운 삶의 본질을 묻어둔, 독특하고 절묘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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