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가장 큰 장점과 장애는 원작자 J.K. 롤링입니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줄거리, 원작의 엄청난 명성을 제공해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만큼 원작자의 간섭도 심했지요. 결국 대부분이 롤링 뜻대로 흘러갔고 감독인 크리스 콜럼버스나 각색자 스티븐 클로브즈는 롤링의 비전을 그대로 옮기는 하청꾼 신세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과는 책의 각색물이 아니라 책의 영화 버전이었습니다. 스토리나 설정 캐릭터들은 거의 바뀌지 않고 영화에 그대로 투영되었어요. 마법의 분류 모자가 속삭이는 대신 큰 소리로 떠드는 정도의 변형도 상당히 눈에 뜨일 정도라고 할까요.

충실한 각색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기본이 탄탄한 작품이니까요. 만약 이야기 자체가 좋고 바로 그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에 끌린다면 꼭 바꿔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약은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예술가들의 운신의 폭을 좁혀버렸습니다. 책이란 작가만의 것이 아닙니다. 독자마다 책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요. 각색이란 작가의 뜻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색자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적극성을 빼앗긴다면 최종 작품이 다소 굳어질 수밖에 없지요. 직접 메가폰을 잡지 않는 한, 최종 작품에 대한 작가의 터치는 간접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원작에 있던 무언가가 그 과정 중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그걸 보완할 수 있는 건 감독과 각색자들인데, 그들은 이미 고삐를 빼앗기고 말았고요.

이 영화에도 그런 흔적은 보입니다. 스토리는 충실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된 호그와트도 더 이상 그럴싸할 수 없어요. 배우들도 원작의 이미지와 참 잘 맞습니다. 그런데 원작에는 잔뜩 들어있던 톡톡 쏘는 위트와 풍자가 많이 죽어버렸어요. 영화는 여전히 흥미진진하지만 원작의 생기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당연하죠. 위트와 유머는 훔쳐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몸에서 녹아나오는 것이죠. 남의 것을 끌어올 수 없다면 자기 것을 내야 하는데, 클로브스와 콜롬버스에겐 그럴 자유가 없었지요.

그러나 그래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스토리가 풍성하고 빨라서 2시간 반의 러닝타임도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워낙 비주얼이 강한 소설이기 때문에 원작에 묘사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그대로 묘사되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 해도 굉장히 재미있고요.

아마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봤다면 이 영화를 훨씬 좋게 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적어도 보다 객관적으로 볼 기회는 잡았겠지요. 하지만 그러기엔 롤링의 소설이 영화와 너무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과 부정적인 인상 모두 원작과의 상관 관계와 얽혀 있으니까요. 아마 이 영화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소설과 영화의 하이프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러려면 20년은 넘겨야 하지 않을까요?

기타등등

7년 계획의 시리즈라... 과연 얼마나 일관성 있는 작품을 낼 지 모르겠군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쥐꼬리만한 보수를 이유로 빠지려 한다는 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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