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흑백 호러영화를 아시는지? 아마도 영화잡지나 영화방송등을 부지런히 챙겨보는 영화팬이라면 굳이 호러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68년작인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어두운 비판과 통찰로 감독인 조지 A 로메로를 호러의 거장으로 단숨에 올려놓으며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호러장르의 걸작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탁군의 경우 원작을 보고 적잖이 실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영화가 재미없었거든. ( --;; )

자극적인 80.90년대의 좀비영화들을 보던 탁군에게 피 한방울 제대로 보이지 않는 흑백 좀비영화가 재미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떤 영화에 대한 가치기준을 그 영화를 보고 탁군이 재미를 느꼈냐 그렇지 않느냐에 두는 대중문화의 화신 탁군에게는 사회비판적인 메세지 따위는 그저 반사회주의자의 웅얼거림정도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 하지만 이 영화가 호러라는 B 급장르에도 작가주의를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에는 이의를 달 수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재미는 없다만 당시에 봤으면 재미도 있었을 수 있으니깐. )

그렇다면 탁군은 무엇때문에 이 영화 ( 오리지널 ) 에 기대를 하고 보았을까. 그것은 물론, 이 후 로메로가 70년대 말부터 연출한 일련의 좀비 3부작 ( 시체들의 새벽, 시체들의 낮 )의 극적 재미가 뛰어났음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실로 중요한 이유는 원작을 보기 전에 리메이크판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좀비 3부작이 모두 끝난 뒤, 시체들의 새벽에서 특수분장을 맡았던 톰 새비니는 90년에 살아나는 시체들의 밤의 리메이크를 감독하게 된다. 물론, 오늘 이야기할 영화도 이 '재미있는' 리메이크 판이다.

기본 설정은 비슷하다. 우선, 영화가 계속해서 진행됨에도 미국땅을 뒤덮는 좀비떼거지들의 원인은 마지막 편인 '시체들의 낮'에서도 밝혀지지 않는다.

이 좀비 시리즈의 첫 편에서는 어머니의 무덤으로 성묘를 간 바바라와 그의 오빠라는 사람이 기념적인 좀비와의 조우를 끝마친 뒤 계속적으로 좀비떼가 어디선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당연하게도 원인이 없는 이 질병은 치유가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의 목숨만 지키기에 급급할 뿐. 로메로는 원작에서 이 알 수없는 좀비떼들을 통해 서서히 썩어가는 미국을 얘기했었다. ( 리메이크는 뭐, 비슷한 얘기이니깐. )

여기까지의 기본 설정은 비슷하지만 이후의 영화는 조금은 고리타분하던 원작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60년대의 영화가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바바라' 라는 여자주인공의 캐릭터 변화이다. 원작에서는 영화의 대부분을 넋이 나간채 비명만 질러대다가 지 오빠한테 물려죽었던 이 아가씨는 리메이크에서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이 '바바라'는 머리를 짧게 깎은 채, 누구보다도 더 용감하게 좀비들을 아작내며, 마지막에는 홀로 자위대를 이끌고 돌아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여전사라는 것이 여성성을 포기하고 남성성을 획득하면서 얻은 타이틀이긴 하지만, 그래도 로메로가 계속해서 극본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영화 속 여성상을 표현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벤'이라는 흑인 캐릭터와 '쿠퍼'라는 백인 캐릭터의 갈등구도에 있어서도 백인 중산층 계급과 흑인 블루칼라 계급의 계급간 갈등에서 리메이크에서는 단순히 '수컷'들의 권력다툼의 모습으로 그 비판정신이 조금 희석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신에 영화는 좀비 영화에서 보여 줄 수있는 액션영화로써의 쾌감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물론, 다른 고어씬이 주력인 좀비영화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출시판으로 즐기는데에 별 무리가 없다는 데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 물론, 한국이라는 특수한 가위질 문화아래에서의 이야기이다. )

어찌어찌해서 좀비들과의 싸움이 막판에 이르르게 되면 영화는 원작과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유일한 생존자인 흑인 '벤'을 뒤늦게 도착한 자위대가 좀비로 오인, 사살하게 되면서 관객에게 끝갈데없는 우울함을 선사했다면 90년도의 리메이크판은 이미 좀비가 되어버린 벤을 자위대가 사살하고 사사껀껀 딴지를 걸었던 생존자 '쿠퍼'를 바바라가 사살함으로써 멋진 여전사의 이미지를 완성시키며 끝나는 것이다.

오히려 리메이크판에서는 자위대가 좀비를 이유없이 갖고 노는 장면을 길게 보여주며 좀비로 의인화된 일반 대중이 총으로 상징되는 절대권력에 희생당하는 모습에 그 비중을 두게 된다.

이는 오히려 좀비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는 두번째 좀비 시리즈 '시체들의 새벽'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셈이 된다.

영화는 확실히 리메이크라는 모습을 보이며 90년에 새로 나왔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원작과의 시간차이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든 적응하려는 ( 그것도 자신의 대표작을 통해서 ) 로메로의 발악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가지 단언하자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론이기도 한 한마디는 역시나 이 리메이크는 오리지날보다 훨씬 더 잼있다는 것이다.

p.s. 1. '캔디맨'에서 뛰어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흑인 배우 '토니 토드'의 볼 움푹패인 - 한 마디로 살빠진 - 모습을 볼 수있다. 젊어도 멋있는건 멋있다.

2. 이 영화의 감독 톰 새비니는 이미 특수효과면에서는 꽤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배우로 출현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영화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기억하는가? 거기서 '섹스머신'이란 민망한 이름의 캐릭터를 맡았던 사람이 바로 감독 톰 새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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