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 <양들의 침묵>

연이어 일어나는 여성들의 죽음, 그후 1년, 다시 임산부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범인은 이미 교도소에 감금한 상태이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12월 20일 개봉하는 영화 'H'는 심리스릴러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스릴러 장르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영화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6명을 죽이고 마지막 사체를 시경에 내던지면서 자수를 하는 연쇄살인범 신현, 미혼모인 창녀 밑에서 자란 강형사, 약혼자를 잃은 미연, 이렇게 암울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연출을 맡은 이종혁감독은 자작시나리오 로 충무로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나름대로 독특한 소재로 관객과 첫인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촬영감독은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를 맡았던 호주출신의 피터그레이가 맡았다. 음악은 두말하면 잔소리인 조성우씨가 나름대로의 감각을 살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두 명의 남자배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지진희의 강형사 연기는 나름대로 실제 강력 반 형사다운 모습을 보여주어 신선함과 동시에 차기작인 <방아쇠>에 기대를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또한 <춘향뎐>이나 <후아유>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조승우는 이번 연기에서도 냉혹한 살인범의 이미지 속에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냉혹함을 더욱더 극대화시키는데 일조를 한다.

영화 <에이:치>는 1년 전 살인사건을 오프닝장면으로 처리해 그다지 많은 설명을 부과시키지 않는다. 현재 살인사건과정을 좀더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1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설명을 조금씩 드러낸다. 어쩌면 이러한 것은 오프닝 때 스쳐 지나간 살인사건의 흔적이나 잔상을 본론부분에서 좀더 관객들에게 각인 시키는 효과를 감독은 연출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필자는 2시간 남짓 되는 런닝타임 동안에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가량은 다소 몽롱하면서도 지루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 7월의 장마철처럼 끈적끈적한 습기에 몸이 맡겨져 있는 것처럼 약간은 부대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전반에 걸쳐져 있는 <에이:치>의 마력이 아닐까?! <에이:치>는 단지 극중 인물에게 미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서서히 물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의 장면 적인 요소를 살펴볼 때 재미있는 점을 발견 할 수 있다. 살인마 신현을 취조하는 지진희의 모습이나 염정아의 모습에서 문득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박사를 취조하는 스탈링이나 윌그레엄이 연상된다. 또한 영화의 종결부분으로 갈수록 점점 <쎄븐>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영화는 독자적인 모습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이미 헐리웃에서 제작한 영화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여지는 것은 관객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화 <에이:치>는 최근 한국영화 <하얀방>, <색즉시공>에서 다루는 낙태를 기본적인 요소로 잡고 있다. 그와 더불어 운명론적인 죽음을 그 이면에 강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강형사나 신현 등 그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인 죽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꼭 뫼비우스의 띠처럼 죽음은 계속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시킨다. 1999년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딩>을 기점으로 한국영화에서도 스릴러 장르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우선 소재의 다양성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피와 잔인한 살인장면 이외에는 그다지 충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는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제목 <에이: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단서를 뜻한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나올 때 비로소 그 <에이:치>의 의미를 파악할 수 가 있다. 8월부터 사납게 짖는 도베르만과 살의를 품은 소녀의 섬뜩한 긴장을 표현 한 예고편을 시작으로 <에이:치>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나름대로 홍보마케팅에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국영화 속에서 스릴러를 정착시키는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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