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후아유 : 엉터리 카피와 베스트 사운드트랙

최근 <후아유>의 포스터와 움직이는 동영상 광고가 거리에 자주 눈에 띈다. 나는 그 포스터를 볼 때마다 문구를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가 쓴 카피일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알 수 없는 그녀와 아는 척하는 그넘의 러브게임', '국가대표 청춘영화'라고? 아마 최악의 영화카피상을 뽑는다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영화의 컨셉은 인터넷 세대, N세대인데 그 감수성은 광고에 전혀 녹아 있지 않다.

<후아유>는 '후아유'라는 네트워크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의 직원과 이 게임의 베타테스터인 게이머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한 마디로 PC통신을 소재로 했던 <접속>의 네트워크 게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딱 그만큼 게임이 소재로 등장하고, 그외는 기존의 사랑이야기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

기획 당시에 비해 개봉을 앞둔 지금 <후아유>는 마케팅 포지션을 아바타나 인터넷 등 소재 중심에서 '새로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꾼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흥행을 염두에 두고 좀더 보편적인 영화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국가대표 청춘영화'라니! 이나영이 극중에서 국가대표였던 것을 빗댄 것일까? 아니면 이들의 사랑이 국가대표급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사랑에도 우열이 있나? 정말 국가대표를 기대한다면 차라리 집에서 월드컵이나 보는 게 낫겠다.

최호 감독은 <바이준>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상에 무척 신경을 썼다. 다행인 것은 <바이준>에서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와 왕가위를 흉내만 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많이 자제하고 관습적인 드라마를 충실히 그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 역시 철저히 네트워크 게임이나 순정만화에 기댄 것이기는 하지만.

"너는 나를 몰라", "내게 너를 좀 더 보여줘", "나를 더 잘 아는 친구는 없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순정만화에 나오는 대사들이 끊이지 않는 사운드트랙과 함께 흘러나온다. 이나영의 미모 이외에는 별로 그녀를 잘 이해한 것 같지 않은 조승우는 한사코 그녀를 너무 잘 안다고 우기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여자가 남자에게 돌아서고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작위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어쩌랴, 그게 이런 종류의 소위 N세대 청춘영화의 운명인 것을!

인터넷으로 만난 연인들의 시간 떼우기용 데이트 영화로는 나무랄 데 없을 것이다. 그밖에 줄리아 하트나 델리 스파이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조성우의 사운드트랙은 이준우가 '차우차우'를 재편곡 해준 것을 비롯해 레이지본의 '사랑하고 싶어', 롤러코스터의 '러브 바이러스' 등 주옥 같은 곡을 포함한다. 그중 특히 나의 추천곡은 줄리아 하트의 노래들이다. 왜 이제서야 그들의 노래를 음반으로 들을 수 있는건지 모르겠다.

2. 묻지마 패밀리 : 너무 커버린 패밀리

사실 나는 최근 장진(A)의 코미디를 별로 기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기막힌 사내들>만이 그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던 유일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그는 너무 설쳐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저것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패밀리를 만들려고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패밀리는 신선한 자극이었다. <커밍 아웃>, <다찌마와 Lee> 등이 보여준 것은 자극적 웃음이라기 보다 새로운 패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 패밀리는 너무 커져 있다. 신하균, 임원희, 류승범, 정재영은 이미 이름만 대도 유명한 스타들이고, 김대령, 구혜주 등은 성장하는 중이다. 이제 장진은 자신의 사람들 만으로 상업영화 한 편을 거뜬히 찍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 혹은 제작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과연 한국에서 어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씨네21]은 한국영화 파워 1위로 강우석을 매년 꼽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는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자신이 키운 배우와 찍어서 흥행도 시킬 수 있다는 면에서 한국에서 가장 걱정 없는 영화인 1위는 장진이 아닐까 한다.

그게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지만, 나는 후자쪽으로 무게를 기울이려 한다. 패밀리가 커가는 것은 확실히 별로 보기 좋은 현상은 아니다. 어떤 대가족도 사람이 늘어나면 분가도 하고 딴살림도 차리면서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족을 유지하는 노하우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장진 패밀리 중 누군가가 딴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묻지마 패밀리>는 그런 의미에서 분수령에 놓여 있는 영화다. 만약 이 영화가 성공한다면 장진은 더 위험해질 것이고, 실패한다면 장진에게 약이 되는 또다른 기회가 주어지게 될 것이다. 유명한 CF와 괜찮은 단편영화들을 만들었던 신인감독 3인이 장진 브랜드 하에 묶인 이 프로젝트는 일단 영화적으로는 무난한 편이다.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나 코미디가 재치 있고 부담스럽지 않다. 세 에피소드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정말 단편영화 세 편을 따로 보는 것 같은 점이 이 영화의 단점이긴 하지만, 영화 속에서 세 편을 연결시키려는 애교 있는 시도가 그 단점을 만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스타시스템과 신인감독의 위험도가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뭐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별로 흥행이 잘 될 것 같지는 않고, 또 그렇게 되어야 장진과 그들의 패밀리가 오래 존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