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는 97년에 나온 [접속]의 속편쯤 됩니다. 시리즈로 엮으려고 작정했다면 [접속: 두번째 이야기] 따위의 제목이 붙을 수도 있었겠죠. 공동 각본가 중 한 명인 김은정은 [접속]의 각본가이기도 했어요.

그동안 5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니 세상은 참 많이 변했습니다. 느림보 전화 모뎀으로 연결된 컴퓨터로 텍스트 통신에만 만족하던 [접속] 시대는 오래 전에 갔습니다. 초고속망으로 연결된 아이들이 요란한 그래픽이 부글거리는 온라인 게임 속을 뛰어다니는 시대가 온 것이죠. 우울증에 걸린 침울한 30대들은 막 세상에 발을 내디딘 20대 아이들로 바뀌었고요. 이제 주인공들은 이 가상 세계에 훨씬 깊게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실제로 게임 제작자이기도 해요.

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후아유]는 '인터넷 시대의 로맨스'에 대한 거의 모범적인 답변입니다. 나온 영화들도 별로 없는데, 어쩌자고 이야기가 이렇게 공식적인지 모르겠군요. 변형 가능성이 그렇게 높은 소재가 아닌 모양입니다.

구체적인 줄거리가 필요하세요? 63빌딩에서 근무하는 두 남녀가 실제 세계와 인터넷에서 동시에 다른 아이덴티티로 연애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단지 그들이 만나는 가상 공간의 설계자인 남자는 이 사각 관계의 구도를 꿰뚫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실을 숨긴 데 대한 죄책감과 수퍼맨-로이스 레인-클락 켄트 식 삼각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당연하지만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이들이 이런 가면 놀이를 접고 직접 만날 때입니다.

[후아유]는 감각의 게임입니다. 주인공이나 스토리나, 모두 얇기 그지 없습니다. 이들은 영화가 로맨스의 개념을 이미지와 사운드로 장식하는 동안 스토리를 고정시켜주는 기둥으로 존재합니다. 당연히 이들의 감정도 그렇게 깊지는 않습니다. 덕택에 이들의 관계가 진짜 깊어지고 강렬해지려고 할 때는 영화 자체가 흔들리고 말아요. 다행히도 이들의 정서적 위기는 가볍고 장식적인 껌광고식 화해로 잽싸게 극복됩니다.

특별히 퇴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접속]이 캐릭터들을 조금 더 깊이 다루기는 했지만, 그 영화 역시 통신 시대 로맨스의 개념에 멋부리는 장식을 붙인 것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20대 초반의 젊은애들에게 30대의 어른다운 깊이를 요구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입니다.

배우들은 그냥 자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일차적으로 피사체이고, 이차적으로 대사 읊는 머리지요. 인주역의 이나영은 언제나처럼 장식적인 가치가 상당히 높군요. 막판에 둘 다 감정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살짝 비틀거린다는 것만 빼면 특별히 지적할 만한 단점은 없습니다.

[후아유]는 살짝 새로운 소재로 장식한 공식적인 로맨스입니다. 제가 이런 식의 공식적인 장르물에 그렇게 비판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보다는 조금 더 새로울 수도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했습니다. 업그레이드된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 자체도 약간이나마 새로운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죠.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가 따분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기타등등

요새 드물게 보는 2.35:1 화면비의 한국 영화였죠. 이런 화면 비율의 한국 영화는 같은 비율의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훨씬 넓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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