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비용 350원에서 50원이 부족한 김승우(허봉구)는 결국 300원으로 산 일회용 라이터 하나를 손에 쥔 채 예비군 훈련장 앞에서 밤을 기다린다. 그때 우연히 나타난 택시 한 대. 그 택시에는 수다쟁이 택배배달원 강성진이 타고 있었다. 이 택시에 올라탐으로써 '영웅 허봉구'의 일화는 시작된다.

<리틀 빅 히어로>의 더스틴 호프만과 비슷하지만, <라이터를 켜라>의 김승우는 더 코믹하고 재미있다.(확실히 그에게는 코믹연기가 더 어울린다) <신라의 달밤>에서 조폭적 체육교사였던 차승원은 국회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려고 일을 저지르는 폼나는 건달역을 맡아 멋진 콧수염을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박영규는 위기의 상황에서 민주화 시절의 혹독한 시련을 회상하는 국회의원역을 그럴 듯하게 소화한다. 이 세 명의 삼각관계(?) 사이에 감초로 등장하는 김채연과 이문식, 강성진은 영화 중간의 쉼표마다 웃음을 튼튼하게 이어주는 구실을 무리없이 해낸다.

달리는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 <스피드>처럼 달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등장인물들이 시종일관 자아내는 코미디로 영화는 2시간을 금방 달려간다. 기자시사회의 무대인사에서 신인 장항준 감독은 재치있는 언변으로 이 프린트가 완성본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완성본은 도대체 얼마나 더 재미있어질까?

첫번째 영화인 <라이터를 켜라>의 완성도와 코미디를 다듬는 솜씨를 볼 때, 장항준 감독은 재치있을 뿐만 아니라 재기 넘치는 사람처럼 보인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등 김상진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집단 코믹 난투극을 살짝 비틀면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간다. 이를테면, 서울역에서 차승원은 이문식에게 "우리가 싸우러가냐?" 라고 물으면서 부하들 몇 명만 데려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천안역과 대전역에서 깡패들과 경찰들을 대거 투입시키면서 집단 난투극으로 영화를 몰고갈 것처럼 하다가 결국 전부 배제시키고 영화를 세 명의 이야기로 압축시킨다. 소수의 이야기를 집단으로 확장시켰던 김상진 감독의 웃음 만들기를 오히려 코믹하게 반전시킨 것이다.

김승우가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처럼 기차 지붕에 올라 기관실로 향하는 모습은 '어리버리 허봉구'라는 설정이 있었기에 더 극적이고 재미있을 수 있었다. 되는 일 없이 살아가던 그가 그의 전재산을 털어서 산 라이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한편, 우연히 일회용 라이터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 부하들 보기에 '가우'가 서지 않아 꺼내지 못하는 차승원의 안절부절은 그에게 폼잡는 양아치로서의 설정이 있었기에 더 코믹할 수 있었다. 그가 국회의원에게 요구하는 돈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고 그래서 그의 행동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폼나는 모습과 코믹한 모습의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가진 박영규는 둘 사이에 존재하면서 너무 오버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영화에 재미를 더했다.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부터 기대를 가지게 했고, 결국 근래 한국영화 중 보기 드물게 '정말 재밌는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만든 젊은 감독 장항준의 다음 영화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도대체 "경찰청장배 고교 축구대회가 1시에서 3시로 연기되었다"는 대사는 얼마나 기발한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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