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켜라>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작법 교재용으로 채택해도 좋을 만큼 제대로 쓰여졌다. 하찮아 뵈는 소재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며 캐릭터에 개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라이터를 켜라>의 일련의 모범적인 것들은 시나리오 작법시 기본사항으로 중요시 언급되는 것들이다. <라이터를 켜라>는 또 한정된 공간 안에서 밀도 있고 탄력적인 이야기를 끌어냄으로써 시나리오의 좋은 교본이 된다.

이 제대로 된 시나리오는 박정우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이미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선물>로 수많은 관객을 웃고 울게 한 국내 몇 안 되는 대접받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늘 코미디와 손잡고 있고 사회를 축소해 놓은 특정 공간 안에서 신랄해진다. 이번 <라이터를 켜라>는 부산행 기차 안에서 가능한 모든 풍자와 재미를 실어놓아 그 어느 작품보다 뛰어난 작력을 자랑한다.

라이터 하나로부터 재미를 이끌어내고 사회와 개인의 문제로 확대시켜 나아간 블랙코미디 각본은 그러나 영화화되어서는 몇 가지 탈선을 보인다. 가령 조폭에게 강탈된 열차는 중간에 한 번 서는데 아무도 도망치지 않는다. 또 마지막의 열차 충돌 직전의 장면에서 대형사고가 예상됨에도 사고 예비반의 활동은 미비하다. 실제상황이라면 헬기 뜨고, 구급차 막 삐뽀삐뽀 하고, 도중에 살겠다고 열차서 뛰어 내리는 인간 있을진대 승객은 너무나 숙명론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열악한 국내의 제작여건은 나중에 열차를 충돌직전 멈추게 한다. 열차는 잘도 선다. 이러한 설정은 눈요깃거리의 아쉬움 이전에 비현실적인 허술함으로 다가온다. 한편 느닷없이 끼여든 상황실에서 간부들이 환호하는 모습은 마치 우리가 늘 욕해오던, 감동을 강요하는 할리우드의 작위적 설정 같아 거북스럽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앞서 말한 작법적으로 제대로 된 시나리오 속에 사회 풍자적인 시비와 인간을 바라보는 정감어린 시선을 녹여냈다는 데에 있다. [★★★]


※ 출연진에 대하여

1. 이문식, 유해진, 배중식, 이원종, 성지루, 정은표 등의 초호화 라인업: 요즘 잘 나가는 인기 조연들이 대거 출연, 버라이어티한 연기의 향연을 선사한다.

2. 김채연 신고식: <세이 예스>에 까메오 출연한 바 있던 김채연의 데뷔 연기는 실망스럽다. 욕이며 목소리, 행동 등 모두 어색하다.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 끼어있어서 부조화는 더더욱 부각된다. 시사회장에서 동석한 지인에게 캠코더로 무대인사 하는 자기 모습을 찍게 한 모습은 귀여웠다.

3. 차승원과 김승우: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에 비해 유연하지 못한 약간 의식적인 연기를 펼친다. 반면 김승우의 연기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호연을 펼친다.

4. 김선경(차승원 아내 역): TV 연기자로 데뷔해 이젠 뮤지컬 배우로 더 알려진 그녀의 출연은 매우 반갑다. 잠깐이지만 기억될만한 의미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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