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찌마와 Lee>가 한창 이슈화되고 있는 지금에서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비디오로 보게 되었다. 보고난 소감은 한 마디로 이거다. "어이가 없네.."

이 정도 영화를 가지고 올해 최고의 신인이니 하면서 각종 매스컴 및 보도자료, 인터넷에서 난리 부르스를 떨었단 말인가. 카메라나 영상은 그저 그렇고, 스토리도 뭐 그저 평범하다. 잔뜩 기대했던 액션장면은 천편일률적이고, 4부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억지로 끼워맞춘 구석이 역력하다. 쉴새없이 남발되는 욕에서 사실적인 대사와 리얼리티를 기대했지만, 영화 자체가 그보다는 오히려 코미디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인 김성제씨는, 적어도 이 영화가 독립영화와 충무로영화를 오고가며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새로운 모델이고 많은 사람들이 류승완처럼 되고 싶어 한다. 요즘 개봉한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역시 이에 고무되어 극장 개봉을 시도한 마찬가지 케이스 아닌가. 하지만, 여기 문제가 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6000원 내고 봤다면 정말 억울할 뻔했기 때문이다. 극장개봉을 위한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는 따로 있다. 컨셉이 맞지 않는 영화를 억지로 극장에 붙여서 걸작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물론 그렇게 만드는 입장에서 그런 말 하기야 쉽겠지. 또, 어느 정도는 스타가 필요하기도 했을테고. 하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한국영화가 류승완이라는 수완 좋은 감독과 다양성이라는 명분을 얻었다면, 그만큼 한국영화는 시스템이나 영화소재 등에서 후퇴하거나 별로 발전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혹자는 말하겠지. 결국 독립영화나 충무로나 둘다 해피하게 가지 않았냐고. 과연 그럴까. 둘다 해피하게 갔다기 보다는 독립영화가 결국은 상업영화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는 것만을 증명해준 셈 아닐까. 그건 곧 상업영화를 할 뜻 없이 독립적인 방식에만 몰입하고 있는 작가들을 한 뭉텅이로 매도하는 꼴밖에 안된다. 아니라고?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주 쉽게, "그러면 어때?" 라고. 독립영화판에서 떠서 상업영화 하겠다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있느냐고 말이다. 그래.. 이 문제는 지겹다. 그만두자. 관객과 관계자를 왔다갔다하는 내가 뭐 이런 말 할 자격이라도 있나.

사실, 영화가 좋다면, 그게 독립영화건 상업영화건 디지털영화건 인터넷영화건 별 상관이 없다. 신경쓸 게 뭐 있어? 영화가 좋으면 그만이지.

정작 문제는 언론에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너무 띄워놓았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감독은 보여줄 것을 다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스타가 되어버렸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이 영화는 2000년 한국영화 걸작으로 기록되어 버렸다.

언론에서 너무 띄워놓은 나머지 마치 류승완이 독립영화라는 아주 힘든 판에서 힘겹게 고생하다가 코리안 드림을 이룬 것처럼 상업영화판에 진출했다는 그런 식의 언론플레이가 자주 등장한다. 확실히 요즘은 '성공시대'라 그런 식의 보도는 경제위기를 겪는 우리를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류승완의 차기 프로젝트는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든 '좋은영화'에서 제작한다. 이제 확실히 뜬 만큼 영화계 윗바닥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결국 필자 생각에 그저 평범하기만 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모 언론에 의해 갑자기 추앙받고 '성공시대'가 되자마자 스타가 탄생했다. 물론 류승완은 <다찌마와 Lee>까지 볼 때 충분한 능력 있는 스타감독이자 배우이다. 특히 <다찌마와 Lee>의 그 대사나 장면 만드는 능력 등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결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그렇게까지 칭찬받을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해야 한다면, 영화 자체보다는 그 영화를 포장해서 극장에 거는 기막힌 솜씨에 더 감탄해야 할 것이다. 아마 미국이었다면 이런 개봉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리메이크 방식으로 제대로 다시 만들었겠지.

평범한 영화에 열광하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은 결국 언론사 제작, 기자와 평론가 주연에 의해 시작되었고, 급기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2000년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재능있는 감독 류승완을 위해서도 훗날 아마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류승완을 빨리 만나고 그의 재능이 이제 꽃필 거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너무 급하게 피고 시들어버린 장난감 같은 장치들은 이제 지겹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결코 잘 만든 영화는 아니며 그렇게까지 띄워줄 필요는 없었다. 없는 돈으로 4편을 만들어 붙여서 장편을 만들었다는 깜찍스런 시도, 충무로 방식으로 블로우업해서 극장에 걸어보자는 시도, 이것만이 재미있고 독창적인 것의 전부이다. 이런 모델링에 열광하려면 그것은 그런 열광과 환희로 족하다. 괜히 영화까지 그렇게 부풀려가며 띄워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