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10

감독: 류승완, 배중식
출연: 류승완

충무로에서 영화 만드는 법
1. 거액의 제작비가 들었다고 뻥 칠 것
2. 해외로케를 나갈 것
3.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우길 것.

<쉬리> 이후 거액의 자본을 들인 영화들이 대거 기획되고 있다. 감독의 연출력보다 기획력에 승부를 둔 기획영화만 난무하는 충무로 판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난 것은 정말 크나큰 행운이다. 김희선의 말도 안되는 연기를 보기 위해 20만이 넘는 서울 인구가 극장을 찾는 주말에는 더욱. 9시 뉴스에까지 <비천무> 바람이 부는 날은 더더욱. 오늘 같은 날은 한국영화면 무조건이라는 식의 싸구려 애국심이 넘치는 촌스런 나라에 사는 것이 비통할 따름이다.

아, 물론 할리우드에도 연출력 미비한 블록버스터들이 많긴 하지. 나같이 삐딱한 사람들만 사는 국가는 아니니까. 롯데 호텔서 무슨 일이 있든 상관없는 나라였으니까. 9시 뉴스에 영화를 선전하는 문화정책에 심히 감사를 표한다. 그래야 영화쟁이들이 먹고살기 쉬울 테니까.

옆으로 샜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7/15 개봉)는 충무로의 싸구려즘을 일시에 불식시키는 영화다. 영화과도 안나왔는데 이렇게 잘 만들다니 하는 생각은 정말 감독에 대한 모독이다. 그건 연출을 너무 만만히 보고하는 말이다.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 공돌이 둘이 벌이는 싸움과 비극적 운명, 다시 맞붙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액션, 호러, 세미 다큐, 르와르 등 다양한 장르를 공 다루듯 하는 감독을 보면 고개가 절레절레. 그는 한국의 기타노 다케시다. 아니, 더 낳다(고 하면 기타노 팬들이 서운할레나?).

흘려찍기 쉬운 액션을 꼼꼼하게 찍은 감독의 연출력은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다. <나쁜 영화>의 자투리 필름을 사용해 첫단편 <패싸움>을 만든 이후 무려 4년간 헝그리 정신이 빚어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인생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살아갈수록 황무지처럼 변하는 삶의 모습을 이렇게 폼나고 이렇게 리얼하게 그릴 감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그런 영화다.

살아가다 보니(아, 많이 산 건 아니지만 살만큼 살고 있죠) 삶의 양식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이더라. 깨지거나 버티거나. 웃거나 울거나. 만나거나 헤어지거나.

새천년이 절반이나 지난 7월이 되어서야 류승완 감독을 만나는 것은 영화계의 불행이다. <비천무>를 류승완 감독이 찍었으면 어떨가? 김희선, 당연히 캐스팅 대상에서 제외됐겠지. 그럼 좀 나았으려나? 빈익빈 부익부의 정글법칙으로 지배되는 영화판은 역시 학연과 지연이 난무하는 곳임을 새삼 느낀다. 아, 동창회, 동문회 혹은 무슨무슨 회가 다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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