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9

감독: 김영준
출연: 김희선, 신현준

역사의 비정함 속에 담긴 애닳은 사랑의 서사시 <비천무>(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7/1 개봉)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상반기 최고의 대작영화로 떠오른 <비천무>는 40억의 제작비와 중국 올로케 촬영으로 개봉전부터 화제를 뿌렸던 작품. 신현준과 김희선 등 화려한 캐스팅보드를 내세워 무협 멜로의 진수를 보여 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영화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만큼 일단 비주얼은 성공했다. 중국의 풍광 속에 의상, 세트,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무협이 잘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한다. 첫 도입부의 장면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멋과 맛이 넘쳐난다.

몽고가 지배하던 원나라 말엽. 고려 유민이면서 몰락한 가문의 아들 진하(신현준)와 몽고 장군의 서녀 설리(김희선)가 만난다. 모친 상을 당한 설리가 장군이 있는 소흥으로 떠나고, 비천신기를 연마하던 진하는 설리를 찾기 위해 길을 재촉한다. 소흥땅을 지배하던 공자 준광과 결혼해야 하는 설리와 만난 진하. 설리의 아버지가 자신의 원수임을 안 순간부터 이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6권이 넘는 김혜린의 장편만화를 영화로 옮길 결심을 했을 때는 만화의 방대함을 2시간 내로 압축할 자신이 있어야 하는 법. 액션과 멜로를 표방하지만 둘 사이의 접점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함정에 걸렸기 때문이다. 또 만화가 김혜린이 역사만화에 조예가 깊다는 점을 고려했더라도 내러티브가 이처럼 얽혀있지는 않을 터이다. 영화의 묘미는 관객을 끌고가는 역동성이고, 관객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뒷받침 됐을 때 영화에 빠져든다는 보편적 법칙은 이 영화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하지만 <비천무>의 몇몇 장면, 철기십조가 물위를 오르는 오프닝 씬, 화려한 검술을 자랑하는 무술 장면, 설리와 진하가 죽는 마지막 장면 등은 영화적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스펙터클 면에서는 뒤지지 않는 셈이다.

<글래디에이터>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스펙터클과 내러티브의 탄탄함에 있다고 볼 때 <비천무>의 가장 아쉬운 점은 이야기 구조에 있고, 감독의 진정한 힘은 화면의 아름다움 보다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특히 대중을 겨냥,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에서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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