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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무 (2000, Bichunmoo)
한국 / 한국어 / 무협, 환타지, 로맨스 / 126분 12세관람가 / 2000년 07월 01일 개봉


출연: 김희선, 신현준, 정진영
감독: 김영준
각본: 정용기, 김영준
촬영: 변희성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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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무> 과연 그렇게 씹을 만한가? (7/10)

글: 이윤형
2000년 10월 10일

조회: 2902

올해 7월.. 영화계에서 가장 논란거리가 된 것은 단연 <비천무> (김영준 감독) 가 아닐까 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영상들이며 거기에 흥행까지 성공을 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 입에 오르내려 개나 고동이나 평론가 입네 하고 욕하기에 바쁘다.

물론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영화를 보긴 봤다고 주제에 여러 군데에 영화 평이랍시고 글들을 올려 봤으니까.. 하지만 난 내 생각을 쓴다. 영화 평을 잘 보지도 않을뿐더러 본다고 해도 내가 글 쓸 때는 잊어버린다. 게다가 난 평론가가 아닌 그저 순수한 관객의 입장에서 쓰는 하나의 감상문일 뿐이다. 하지만 웹진이란 것은 대중들에게 보여지므로 평론가의 그것과도 같은 힘을 발휘한다.

한 웹진에서 <비천무>를 미친 듯이 씹어 내리는 것을 봤다. 그 웹진 성격상 이 말 저 말 가리지 않고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로 거름 없이 내뱉는 것이야 인정하겠지만 어떠한 것을 비판할 때는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

그래 . .나도 인정한다. 많이 보아온 화면들이며 신현준 분의 배역은 정말 어느 영화의 주인공과 너무나 비슷하다. 하지만 난 <비천무>를 욕하지 않는다. 혹자들이 한국영화라고 특별히 봐줄 수는 없다고 하지만 난 한국영화이기 때문에 봐줄 수 있다. <비천무>는 새로운 시도 치고 꽤나 독특하며 잘 만들어졌다. <어비스>의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며 떠들어대던 <자귀모>가 정말 보여줄 것은 광고한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욕하는 부분. . 배우들의 연기이다. 내 눈이 이상한 지 모르겠지만 난 신현준 분의 아들 역으로 나온 배우 빼고는 다 괜찮았다. 만화 <비천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김희선은 그 역에 어울리지 않다고 난리를 친 기억이 있다. <비천무>는 엄연히 한국 영화다.

당연히 한국 배우가 출연해야 할 것이다. 그럼.. 김희선 분 말고 누가 그 역에 맞을까. .

심은하..? 전도연..? 고소영..? 김혜수..? 지금 내 머리 속에 딱히 떠오르는 배우들의 이름들은 위 사람들이 전부이다. 이러면 또 신인을 쓰면 된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액을 들여 영화를 만드는데 목숨을 건 모험을 왜 해야하나. 대부분의 신인으로 영화를 만든 <여고괴담>도 이미연이라는 유명한 사람으로 뒤를 받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한국영화의 어려움은 생각지 않고 일단 씹기 바쁜 것인가..

난 가끔 부엌에서 그릇을 찾다가 엄마에게 화를 낸다. 국 그릇 어디 있냐고. . 정리 좀 잘 해 놓으라고. . 그러고 나면 내가 마치 다른 집 식구인 것 같다. 난 왜 집안 일에 관심이 없는 걸까.. 왜 내가 정리할 수도 있는데 엄마에게 뭐라고 하는 걸까.. 그건 전적으로 엄마 일이라서. .? 아니다. 난 내 일도 제대로 안 하는데 누구의 일이라며 분담하지 않는다.

과연 <비천무>를 욕하는 사람들이 역할 분담을 잘 해서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줬을까..


왜 대안은 생각지 않고 욕하기 바쁜 것일까..

영화에는 만드는 사람. 그것을 평하는 사람. 그리고 관객인 동시에 독자인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죽을 고생해 만들고 나면 평하는 사람들은 기차게 씹어 내린다. 그리고 나면 관객은 영화를 좋게 봤어도 갑자기 독자로 변신해 평을 보고 나선 평론가와 같은 입장이 된다.

영화 평론가는 하나의 영화를 보고 그저 자신의 생각을 쓰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안 좋은 점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좀 더 이론적으로 판단하고 대안을 찾으며 혹은 독자들에게 좀 더 유익한 정보를 준다. 더 나아가선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특유의 상상력을 펼쳐 개성 있는 평을 한다. 그것은 너무나 바람직한 일이다. 가끔 그것이 실제로 감독이 의도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과 무조건 욕하면 좋은 줄 아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렇듯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면 되는 거고 평론가는 해박한 지식으로 그것을 평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 혹은 독자가 해야할 일은?

지금은 이렇게 가고 있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좋으면 좋다. . 싫으면 싫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선 평론가의 글을 본다. 이미 평론가들은 시사회를 통해서 보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나서 언제나 들어가면 글이 있다. 그러면 자신의 생각은 제쳐두고 평론가의 글이 전적으로 맞는 생각이다 하여 그것을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버린다. 바로 그 때. . 평론가의 생각이 독자의 생각이 되는 순간. . 그것은 하나의 이상한 여과 장치를 거친다. 이성적인 판단에서 혹평으로. .

다른 사람들은 영화를 좋게 봤는데 누군가가 안 좋다는 쪽으로 평하면 그 사람은 졸지에 영웅이 된다. 다들 좋게 봤는데 그 사람은 좀 더 생각이 있어서 안 좋은 평을 한 것이겠지. . 그래. . 비판적인 글을 보면 솔깃 하는 사람 중 나도 하나이다. 하지만 난 그것을 보면 그 글도 이성적으로 생각해 내 생각과 맞춰본다.

내 생각과 다르면 반론 글을 올려 누구의 생각이 맞는지 저울 해본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생각이 맞다고 결론이 나면 그 사람의 생각이 맞는 것이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나는 내 생각을 그는 그의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감독은 영화를 만들고 어떤 평론가는 솔직하게 그 영화를 전문적 지식으로 판단하고 어떠한 평론가는 돈 될 방법만 모색해 무조건 욕하고 관객(독자)는 무조건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아무리 생각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은 영화 감독 즉. .영화를 만드는 사람 쪽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다 끝이 아닌가.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그야말로 영화의 발전을 위함이 아닌가. 그러려면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할 줄 알아야하고 감독은 이성적으로 자신의 영화 평에 대한 생각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비천무>는 세계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고 그 영화를 씹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것들이라는 것이다. 무슨 영화와 다를 것 없다. . 그래. . 다시 말하지만 다를 것은 없지만 한국 영화 아닌가. 언젠가는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이 비행기 폭파하는 것에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음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영화가 비행기 폭파는 미국에게 맡기고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미 어디선가 많이 보아 왔어도 언젠가는 우리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영화의 나라에서 도움이야 줬지만 처음부터 우리 힘으로만 하기는 힘든 것 아닌가. 도움을 받고 그 기술을 우리의 것으로 습득을 해서 또 다른 재창조를 해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10년이 지난 후에도 옛날 그 영화와 같은 특수효과라고 광고를 해대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되려면 시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남의 일 보듯 다른 나라 영화와 우리 나라 영화를 같은 입장에서 두고 보는가.

가끔 관객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제작비가 얼마 들었다고 다 거품이라고 떠들어댄다. 왜 미국에서 쓰여지는 제작비에는 관심이 없을까. . 바로 그들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놈이 더한다고 어디에 잘 썼겠지. . 하는 사람보다 일단 씹고 보자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의문이다. 그들이 제작비가 어디 어디에 쓰이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 과연 그들이 많다 적다 하는 것은 어느 영화의 제작비를 기준으로 한 것일까..

평론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관객들에게 좀 더 나은 영화 지식을 가르쳐주는 데 있다고 본다. 이미 그들은 평론가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영화에 대해선 일반인들보다 더 잘 안다. 그것을 업으로 하기에 남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니 당연히 많이 안다. 그들이 공부해서 얻어낸 지식들을 영화를 좋아하고 나는 이렇게 봤는데 전문적인 지식은 어떻게 평을 할까.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돈도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평론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글로 옮길 것이고 이것을 우선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보고 싶게 만드는 평을 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문제이다. 돈이 세상 사는데 없어선 안 될 것이지만 한 감독의 말대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분개할 노릇이다. 거기서 뻗어 나오는 문제는 그것이 마치 대중의 생각인 양. 혹은 가장 탁월한 생각인양 하는 것이다. 그것에는 몇몇 생각 없는 독자들이 동참을 한다. 무조건 맞다는 생각.. 왜 영화를 보고 평을 보면 평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 평론가들의 글은 그것이 정답이니 이대로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평은 이렇게 혹은 전문가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읽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맞춰 봐서 판단할 일이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은 아니다.

어느 잡지에는 아예 한 페이지를 20자 평과 별 표 난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떤 평론가는 그것들이 세기말의 유머라고 한다. 단순하고 무식한 내 생각으론 이랬다. 그럼 세기 초 되면 그거 안 할건가. . 문제는 유머라는 것이다. 죽을 고생해 영화 만들었는데 별 몇 개 주고 유머라고? 그럼 영화 한 편 만들고 소리 없이 묻혀 버리는 감독의 일생도 유머인가. . 그 유머라는 별 몇 개를 보고 생각 없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여기 저기에 떠벌리고 다니는 몇몇 독자들의 언행에 조용히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져버려야 하는 감독의 모습도 유머인가..


유머라면 요즘 유행하는 삼행시가 유머다.

그 유머가 모든 사람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이면 오죽 좋으랴 만은 그것 때문에 피해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왜 생각을 못하나. . 유머는 그야말로 농담이다. 아무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농담을 해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왜 아무렇게나 짧은 글로 영화를 평하고 별 몇 개 날리고서 그것을 비판하면. .'에이. .농담이야' 하는 것인가.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은 농담이란 말로 표현할 그런 단순한 것들뿐인가. 그것이 진정 농담이라면 대상자도 보는 사람도 모두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적어도 피해는 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아직 장편 영화를 만들어보지 못해서 그것을 연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나 잘 만들지 못하는 것을 보면 꽤나 어려운 것일 게다. 그러기에 그렇게 똑똑한 우리 큰형도 영화 감독의 꿈을 접었고 고등학교에서 전교 30등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좋은 학교를 들어가야 영화 감독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대학에서 나오는 말이 영화 과는 취업률 0%라는 말이다. 그렇게 목숨을 걸어 영화를 만들었는데 유머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별 몇 개를 던져준다. .?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듯 싶다. 의문인 것은 후에 자신이 별 몇 개를 던져 준 영화에 대해서 다시 별 점을 주라면 그때와 똑같은 수의 별을 줄 수 있을까. . 더욱 의문인 것은 그 별 몇 개 던져주고도 돈을 받는 지다. 물론 평론가들이 글을 쓰고 돈을 얼마나 받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과 사람들의 시선을 교묘히 끌어 모아 유명 인이 된 사람이 같은 돈을 받는다면 혹은 후자의 사람이 더 많이 받는다면 정말 땅을 치며 한탄할 노릇이다.

우선 뉴스거리만 좇는 평론가는 내가 쓴 글을 보면 이런 소리를 할 지 모른다. '그럼 별 점 말고 동그라미로 주면 되나. .'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이 정도 수준이다.

그들이 그런 평으로 한 영화를 평가한다는 것에는 심한 비약이 있을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 과연 그들이 짧은 글과 기준 없는 별 점 표만으로 평론가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들이 현재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를 그런 식으로 짧게 말해놓고 앞으로 만들어지는 한국 영화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이 있을까.. 더욱 큰 문제는 아직은 이 쪽 저 쪽도 아닌 앞으로 한국 영화를 이끌어 나갈 젊은 영화팬들이 그런 글들을 읽고 독단해 버리는 것에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역시 앞으로의 길을 밝혀주는 일보다 얼마나 쉽고 짜릿하게 씹어 내리느냐에 중점을 둘 것이다.

모든 사람이 <비천무>를 욕할 땐 왜 그것이 욕을 먹어야 하는 지를 설득력 있게 글을 쓸 것이지 별 한 두 개 주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그것을 남들과 다르게 재평가하는 일도 해야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거의 모든 평론가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것에 반해 <비천무>는 절망적이리 만큼 욕을 먹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을 하는 반면 싫어하는 것에는 심한 반대가 있기 쉽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천무>를 좋게 본 사람이라면 혹은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만 하다면 자신의 생각을 고수할 것이지 누군가의 글에 목이 메일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최대한의 창작을 해야 한다. 그것을 10개 이상 나가지도 못하는 별 점 표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의 글처럼 글에도 장인 정신이 있어야 하며 그 글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며 대자보의 변희재 편집국장의 말처럼 그들도 창작을 해야한다. 그것은 감독의 의도 외에도 넓은 상상력으로 그것의 앞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관객(독자)은 자신의 생각을 우선하며 평론가의 글을 읽되 무조건적 경외는 피해 자신의 생각과 저울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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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원작과 완전히 다르더라구여~ 음악은 좋던데~ 주연들도 원작하고 딴판이거...그래도 영화로 만들 시도를 하다니 대단해요 감독 짱 (2002/07/10)
글쎄요, 특수효과는 훌륭했다 해도 전혀 원작의 감동과 기품을 담아내지 못한 것 같은데... 원작 팬 (2002/07/10)
비천무 김승택 (2002/02/13)




<비천무> 과연 그렇게 씹을 만한가? - 이윤형 (2000/10/10)
비천무 - 김영미 (2000/07/03)


<비천무>의 기획의도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어떤 소 - 최보은 (200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