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우의 영화 바로보기 #5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인터뷰다.즉 영화 자체가 관객과 인터뷰한다는 이야기다. 인터뷰를 할때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무엇일까? 글쎄 가장 중요한 요소들부터 꼽아보자면 첫째로는 인터뷰를 하는 대상이 필요하고,또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그러나 그 두 주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인터뷰는 성립되지 않는다.만약 그들이 어떠한 공통의 관심사 없이 멀끄러미 서있다면 그것은 흡사 서로 지나쳐가는 사람만도 못한 관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그러기에 인터뷰는 그 두 주체간의 모종의 주제를 가지면서 쌍방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거나 혹은 이끌리거나 때론 상대방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반대하기도 하는 작용을 한다.

변혁 감독의 데뷔작 <인터뷰>는 이러한 인터뷰의 기능을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감독은 두 주체간의 관심있는 그리고 공통적인 주제를 '사랑'으로 잡았다.사랑이라는 것.이 정의 내릴수도 없고 문자(text)로는 도저히 형용하거나 그 감정을 표현해 낼수 없을정도로 추상적인 이 느낌을 감독은 영화내내 찾아내려 한다.어찌보면 애초부터 무모한 시도였는지 모르겠다(아,물론 색다른 시도일수도 있겠다.)왜냐하면 지난날 있어왔던 혹은 존재해왔던 동서고금의 모든 매체들이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부단히 애써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서도).감독은 이제는 뉴미디어의 가장 선봉에 서있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과연 이제껏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표현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이민다.그것이 가능할는지 불가능할는지는 감독조차 모르고 말이다.

감독이 이러한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선택한 두 명의 주인공은 감독 자신의 페르소나인 감독 은석(이정재 분)과 자신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정답을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희 영희(심은하)다.영화속에서 은석은 인터뷰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존재이다.은석은 자신의 유학시절의 경험을 통한 이야기나 조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느꼈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토로한다.'과연 그러한 것이 사랑이었을까?''아니 내가 이 여자와 잠을 같이 잔다는 것이 사랑인 것일까?''순간적이며 찰나적인 내가 느낀 사랑은 결혼과 같은 영구적 올가미에 묶여있는 그것보다 초라한가?아니 감히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인가?'하고 말이다.감독들은 이러한 개인적 고민과 번뇌들을 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찾아나가 보려고 애쓴다.평범한 의사부부의 집안의 이야기,헤어진 연인관계에 있었던 가슴아픈 연인들(후에 결혼에 골인하지만).그리고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키스와 섹스에 관한 이야기들.그래 감독 그 자신도 모두다 해본 경험들.이러한 타자의 인터뷰를 통해서 감독이 얻고자 하는것은 아무것도 없다.아니 그것은 잡을수 없을는지 모른다.이 사랑이라는 넘은 너무도 독특해서 사람들마다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가 천차만별이고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 또한 가지각색이기 때문이다.키스와 섹스라는 것도 어찌보면 사랑의 완성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독은 영화내내 보고 있다.이러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공통적인 부분들을 추출해내가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작업일는지 모른다.

이러한 감독 앞에 무희 영희라는 존재가 나타탄다.영희는 지난날 자신의 꿈과 함께했던 연인을 잃은 존재로서 나온다.영화속 그녀에게는 사랑에 관한 아픔이 담겨있다.이것은 사람들을 취재했던 은석에게는 또다른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실상 그가 인터뷰했던 모든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한 감정들,느낌들만을 열거하기에 바빴던 것이다.(물론 이런것이 멍청하거나 비난받을짓은 아니다.) 즉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진행과정이나 디테일한 부분부분만을 보는 그네들과는 달리 영희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사랑이라는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있다.감독 은석은 이러한 영희의 모습을 보고 차츰 영희의 사랑의 세계에 대해서 빠져들고 만다.

영화 초반부에 자신을 철저하게 숨기려고 했던 모습들이 오히려 은석의 괸심을 끌게 되면서 영희의 진실을 차츰차츰 알게만 되는데 그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녀에게서 사랑이라는 실체에 대해서 알게된다.'사랑이라는 것은 정의내릴수 없고 그것을 잴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감독 은석은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내리고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게된다.자신이 하는 작업이 얼마나 허망한 일이었는지를.그가 가지고 있던 그리고 시종일관 비추어졌던 <타르코프스키의 묘>에 대한 변환장면은 이러한 감독의 심경변화를 여실하게 보여준다.사진에 써있던 문구 "과연 당신은 진실을 알고 있는가?"라는 문구는 그가 찾고자 했던 것에 대한 접근 방법이 결국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서도 결코 캐치할수 없는 현실속에서만 존재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물론 그 사실을 타르코프스키는 알고있었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은 확인 불명한 상태이지만.)

아무튼 이러한 은석의 결론은 어찌보면 지극히 타당한 것이요,영화를 보러오는 관객들에게 있어서는 식상한 느낌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다.관객들은 누구나 다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했을것이요 자신 나름대로의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그림을 머리속에 그려놓는다.하지만 영화속에서는 정말로 평범한 자신들이 꿈꿔왔던 그리고 경험햇던 이야기들만을 늘어놓는데 불과한것이기 때문이다.'에이 저런말이면 누가 말 못해''사랑이라는게 뭐 그런거지 별거 있나?''영화가 말하고자 하는게 겨우 그거였어?'그런거 말이다.이러한 반문들은 어찌보면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변혁감독은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린것 같다.'그래 사랑이라는 거 별거아냐.그치만 그것때문에 당신이 그러한 말을 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게끔 해줄려고 이 영화를 만들었어'라며 이야기 해준다.관객들이 그것을 선택하는것은 그들만의 문제로 귀결되지만.아무튼.

그러나 영화 형식으로로 보았을때는 비난받아야 할점도 부분부분 엿보인다.픽션과 논픽션부분을 혼합해서 엮어내려는 시도는 참신했지만 두 부분에 대한 불균형한 혼재에 있어서 오는 관객들의 혼돈은 충분히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왜냐하면 픽션과 노픽션을 결합한다는 시도는 우선 이 영화의 주(主)가 되는 은석과 영희의 이야기에 대한 완결성 위에 덧붙여져야 하는것이 지극히 타당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감독은 이러한 불균형의 양식을 계속해서 고수하다가 결국 마지막에 영희와 은석의 사랑이야기를 조합해나가는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감독이 말하고자 햇던 사랑이라는 의미의 추구와는 관계없이 영화의 기본적 형식을 깬 후에 대한 대안없이 흐지부지 끌없음을 탓하는 것이다.즉 감독은 기존 영화의 보편적인 관념과 인식을 깨버리는 데에는 어느정도 성공했을는지 모르지만 그 파괴이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제시를 명확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단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든다는것은 현 영화계에 있어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린만큼 오늘날에 이러한 시도만으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다.

또한 곳곳에 보여지는 변혁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에 따른 부담감이 역력히 돋보인다는 점도 관객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일으킨다.(물론 영화속 인물 은석이 자신의 개인적 경험의 토대에서 나온것이긴 하지만서도) 가령 프랑스 유학 중의 필요없는 장면들의 과도한 삽입이라던지 영화외적 평가를 고려한듯 싶은 타르코프스키의 차용,또한 빈번한 프랑스 샹송풍의 노래와 마치 '블루'를 연상시키는듯한 프랑스 인상주의적 영상들은 마치 그가 한국에 와서 프랑스 영화의 <전도사>쯤의 역할로서 비추어질 만큼 보인다.물론 그것은 감독 개인의 경험과 노력의 소실인만큼 비난하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그러한 감독과 한국의 평범한 관객들에게는 그만큼 이질적인 그 '무엇'이 스크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이 문득 생각났다.(공교롭게도 주연은 같은 심은하이지만).당시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주목을 받아가며 정말 '사랑'에 대해서 따듯하게 그려낸 수작으로서 평가받은 이 작품이 언뜻 생각난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떠한 영화의 형식적 틀깨기 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맞는 그리고 보편적인 다가옴이 오히려 파격속에 평범한 진리를 겨우겨우 찾아내려고 하는 변혁감독의 당찬 시도보다 관객들에게 더욱더 따뜻하게 다가오는것 같다.마치 변혁 감독이 그토록 찾고자 갈구했던 '사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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