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아왔어도 그리 뻑쩍지근하게 어떠한 계획을 세워놓고 부산을 떨지도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컴퓨터와 전화기를 데리고 노는 이유는 오랜 솔로 생활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곧 군대에 가게될 것이라는 부동의 사실때문이리라~ 자의로 가기 싫다고 해서 가지 않게 되는 군대도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어느정도 하고픈 일이 있기에 조금 미뤘으나 요즘 들어서는 하고픈 일이 많으나 그 많은 일들을 나만 독식하고 있는 것은 독선이고 독재라는 생각에 이제는 말단이 되어 빡빡 기어보는 거두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뭐 여기까지는 건전하고 대외적인 발언이고 사실 군대 안가믄서 알바도 하지 않는 돈벌레라며 점심도 잘 안차려주는 울 엄니의 성화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군대에 가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당.ㅜㅜ)

그렇게 빈둥대다 Cineline을 둘러보다 나도 함 가입해서 그동안의 대학생활동안 보아왔던 영화들을 정리해보고 가는 거두 그리 나쁜일이 아닐꺼라는 생각에서 운영자님께 메일을 띄워 '칼럼 쓰게 해주면 안잡아먹지~'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니 겁이 났던지 아님 우스웠던지 '그래라, 함 잘 써봐라'라는 내용의 답글을 보내서 뭘 쓸까 고민하게 되다 낮잠에 빠졌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바로 '길' 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게 어떨까라는 것이였다. 길..

사람들은 흔하게 '길'이라는 기호에 '인생'이라는 기의를 덧붙이는 일을 자주벌인다. 더불어 '동반자'를 자연스럽게 덧붙이고 '성장'을 세트메뉴로 추가시킨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길'과 '인생'을 등치시켜놓고 보게되는가? 그것은 그 둘다 미지의 것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올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가 있는 요즘이건 짚신이면 땡이였을 조선시대이건 노상강도라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하였고 잘가던 길위에서 날벼락을 맞았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서양에서는 대표적으로 '루터'가 있겠지) 그렇기에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처음 발걸음을 떼는 길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두려움의 변형이랄 수 있는 호기심도 지니고서는 길을 간다. 그렇기 때문일까? 같은 길을 걷는 이를 원하는 것은..

길을 소재로한 영화들은 무척이나 많다. 속칭 '로드무비'라고 불리우는 모든 영화가 나는 길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길'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길'을 따라 영상으로 담는 영화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산책>이라는 영화를 비디오로 접하면서 나두 아직 피가 살아있는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를 갈구하는 인생들의 소박함과 한 길을 가기 위해 뜨겁게는 아니나 꾸준히 노력하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어리숙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이 영화의 대충의 줄거리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대학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영훈(김상중 분)은 유학을 떠난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매일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레코드샵을 운영하는 30대 총각이다. 어느날 매년 하던 대학노래패 공연연습과 레코드샵 운영을 동시에 하기 힘들어지자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게 되는데 이때 단란주점 호스티스를 하다 때려치우고 도망온 연화가 들어오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영훈의 아버지를 노숙자로 알던 연화는 그에게 따뜻하고 사심없는 태도로 그를 대하고 그와 절친한 사이가 된다. 공연 연습을 하던 도중 연화의 단란주점 어깨들이 들이닥치고 공연장을 대여하기로 한 곳이 공사를 핑계로 대여를 해주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아내를 잃고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던 영훈의 아버지가 쓰러지게 된다. 단란주점일을 때려치우고 돌아온 연화는 영훈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받아줄 것을 빌고는 영훈의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한다. 영훈의 친구와 영훈은 강원도 어디쯤의 자연 공연장에서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공연을 마친다.

영훈과 영훈의 아버지가 이 잔잔한 영화에 가장 중요한 갈등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갈등의 핵심에 놓여있는 것은 영훈의 어머니에 대한 의미차이다. 영훈의 어머니는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았는데 술을 좋아하던 영훈의 아버지는 평생을 어머니에게 술심부름과 구타를 일삼았던 존재였다. 어머니의 임종 이후부터 갑자기 그런 아버지가 죄값을 대신하려는 듯이 말을 멈추고 매일 어디론가 떠도는 아버지를 영훈은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자학 수준의 위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자학을 통해서 자신의 본심이 아니였다고 타인들에게 말하려는 듯한 아버지가 영훈에게는 거짓수도자, 위증자로만 보였다.

그러나 사실 영훈 아버지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임종은 그와 함께한 시간들보다 훨 많은 시간동안 '동반'의 의미를 깨닫게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평생을 앓고 지내던 아내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고향길을 한번 같이가자'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전국 각지를 떠돌면서 길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영훈의 아버지는 영훈의 어머니가 실제로는 함께할 수 없으나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를 떠올리는 동안,그 사진을 준비하는 동안, 그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사진을 설명하는 동안은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속죄의식이라기보다는 존재자를 구현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을 분명히 논할 수는 없으나 그렇게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영훈에게 있어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신의 길 밖에 있는 타인과 같은 존재자라고 한다면 영훈의 아버지에게 있어서 영훈모는 자신의 길위에 함께 하는 자신과 같은 층위의 존재자였다. 영훈부의 실언은 그렇기 때문에 속죄의 행위가 아니라 영훈모와의 언어를 만들기 위한 외부와의 단절이라 볼 수 있다.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든다는 것은 언중을 그만큼 줄인다는 뜻이고 그렇기 위해서는 배제는 필수적이다. 영화에서 종종 보여지는 자폐증이라는 병증도 대중들과 구별되어 자신만의 언어를 체화시킨 사람들의 상징임을 돌이켜 볼때 영훈의 아버지의 실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훈의 첫사랑에 대한 태도 역시나 영훈의 아버지의 실언과 닮아있다. 유학갔던 첫사랑을 기다리며 그 사람을 위해 콘서트때 연주한 곡을 매일 틀어두었지만 막상 돌아온 그녀는 그 곡이 다른이를 위해 연주되었었다고 믿으며 콘서트 이후 유학을 떠나버리고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영훈의 아버지의 실언이 영훈에게는 가식과 위선으로 보였던 것처럼 영훈의 연주가 영훈 첫사랑에게는 다른 이를 위한 고백으로 들렸던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같이 걷는 '동반자'를 구하는 일이른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일은 상대 외에 타인에게는 오해를 살 각오를 하여야만 하고 상대와도 끊임없이 다툴 각오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득바득 '동반자'와 함께 '길'을 가려는 이유는 '길'에 있어 중요한 것은 '길 끝의 목적지'가 아니라 '길을 걷는 행위 그 자체'에 있기때문이다. 길은 엄밀하게 말해서 끝이 없다. 떠나려고 마음 먹는 그 곳이 시작점이 되는 것이고 멈추려고 마음을 먹는 곳이 끝점이 되는 것일 뿐.

인생도 끝이 없다. 한 존재자의 죽음은 다른 존재자의 기억속에서 재구되고 재현됨으로 의미가 된다. (무척이나 신비론적으로 이야기하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믿겨진다') 그러하기 때문에 동반자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섹스가 가능한 이성이든 함께 치고받고 머리통 터지면서 나중에 배반당할 동성이건, '동반'하는 동안의 기억들을 공유하고 나중에라도 후에라도 같은 존재 비스무레한 것을 재현할 가능성을 가지기 위하여서, 쉽게 말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 '동반자'를 구하는 것이다.

새해라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놓는 어떠한 기준점일 뿐이다. 그런데 그 커다란 눈금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 저만치 눈금이 움직일 동안 열심히 살테야'라고 다짐케하는 것은 '길' 위에 놓은 나그네들이 해질녁까지 주막을 찾으려 짚신을 고쳐 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다시금 걸어야하는 시작점 위에서 희망을 봇짐에서 풀어 놓고는 절망을 씹어 뱉어버려야하는 준비.. 그리고 동반자를 위한 자그마한 배려.

<산책>은 둘이 해야 재미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둘 이상이여야 같은 '길'을 걸으면서 흥얼대며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어댈 수도 있는 것이다. 새해 이 영화를 보면서 기분 좋아지는 백수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

내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