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컬트영화의 반열에 오를, 아니 이미 상당수의 열혈팬을 거느리고있는 한국영화의 20세기 마지막 걸작.
한국의 어떤 지방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자 신문의 타이틀을 '주유소습격사건?'이라고 뽑았다고 하는데
그 제목만큼 이 침공의 본질을 잘 나타내는 영화제목도 드물다.

영화는 각자 나름대로 상처를 안고 사는 잘빠진 남자 네 명, 노마크, 무대뽀, 페인트, 딴따라의 이야기이다.
내용이야 뭐 다 보셨을테니 이미 다 아실테고. 하나의 공간을 무대로 전혀 연극적이지않으면서 110분동안
다양한 이야기와 에피소드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중간중간에 섞은 농담이 그냥 말장난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전복적인 즐거움과 잘 연결된다. 예를 들어, 주유소 사장에게 커피나 얻어먹으러
온 패트롤카 경찰은 커피 자판기를 깨서 동전을 꺼내 음료수 자판기에서 콜라를 빼먹는 딴따라에게 부모들이
피땀흘려 모은 돈을 외국놈들에게 가져다 바치냐고 힐문하자 딴따라는 아저씨 펩시는 외제가 아니라 국산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하나. 태극마크가 있으니까. 어차피 외국에서 전량수입하거나 상표를 수입해오기는 커피나 콜라
나 매한가지인데 자기들이 먹는 커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경찰의 태도나 괜히 젊은이들에게 되지도않는
소리 하다가 한방 얻어먹는 이 장면의 농담은 그 탁월함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유형은 첫째 박영규와 이원종으로 대표되는 위선적인 기성세대, 둘째 정준과 이요원
등 이들 위선적인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질서에 순응해서 사는 청년 세대, 셋째 유해진과 김수로로 대표되는
이 질서로부터 배제되었기때문에 다른 질서를 만들어서 새로운 세력권을 만들어놓은 젊은 동네 양아치나
철가방들, 넷째 이들의 미래형인 조직폭력배, 다섯째 자동차를 타고 주유소에 들어오는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부유층과 중산층들, 이들은 성공한 프로야구 선수, 돈많은 남자를 꼬시기위해 성형수술을
마다하지않는 멍청한 미녀(나타족의 은유), 가요계의 성공한 연예매니지먼트 회사 사장, 비씨카드를 들이밀다
영문도 모른 채 싼 값에 휘발유를 만땅채우는 불로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고 괜히 선량한 척 따지다가 훔씬
두들겨터지고 위험으로부터 자기 몸 하나 보전하지못하는 무능력한 사람들로 나타난다. 극장개봉 버전에서는
잘려나가 그가 차승원인지 아닌지 관객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비싼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길거리를 누비는
귀족 폭주족은 그 자동차로 대표되듯이 물질적인 풍요와 지위로 인해 교통질서로 대표되는 사회규범을 무시하는
타인의 희생과 인내를 조건으로 한 권력과 자유를 누리는 존재로 드러낸다. 그러니 이 영화만큼 한국의 계급질서
를 압축해놓은 마이크로코즘에 비견할 수 있는 다른 한국영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에 이들 사이로 위의 네명의 아웃사이더들이 들어서지않았다면 이들의 질서는 별 문제없이 그대로 굴러갔을
것이다. 권력/질서에 순응하거나 새로운 권력/질서를 만든 이들의 삶에 변칙으로 등장한 이들의 무뢰행에
당하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고초와 황당이겠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축제처럼 다가온다. 마치 말뚝이가
양반이나 파계승을 놀리는 전근대사회의 탈춤들처럼 기존질서에 대한 전복과 축제의 기능을 이 영화는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런 기존 질서의 균열에 대해 가장 먼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는 이요원인데, 그녀의 긍정적인 반응의 바탕에는
그룹의 짱인 이성재에 대한 흠모가 깔려있다. 질서의 전복은 권력의 이동을 수반하고 그 권력의 이동에 온 몸으로
반응하는 그녀. 그러나 주유소를 떠나는 노마크가 소중히 간직해온 엄마의 사진을 가져다주는 행위로 그녀의 긍정
적인 반응은 단순한 권력에 대한 집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로까지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행위로 그녀는 정신적인 성숙을 하게 되고 바로 그것이 국제화된 한국사회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까지
확장됨을 보여준다. 한편 정준은 이 질서의 전복 속에서 자기에게 잠재된 능력을 깨달아 마침내 삥을 뜯는 자기
학교 짱을 누르고 새로운 짱으로 등극하게 된다. 즉, 그에게는 자기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마련되지않았고 기회의
박탈이라는 점에서 다른 네명의 아웃사이더들의 한맺힌 기억을 공유하지만, 이들 네명은 부당하게 이 기회를
박탈되었던 데 비해 정준은 처음부터 아예 부여되지않았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다. 재능을 발견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사회적 평판에 얽매여 저마다의 재능을 발견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이것만큼 좋은 공감에 기초한 즐거움이 어디있단 말인가. 반면 이 와중에도 영어단어를 외우는 세번째 주유소
직원 소년은 혼란의 상황에서 여전히 구질서에 집착하는 이들을 함축한다. 한편 딴따라의 강압에 못이겨
노래하는 용가리패들은 우연히 그들을 본 연예기획사 사장의 명함을 받고 좋아하는 데 이는 사회적 포용이란
어떤 것인가를 함축한다. 배제된 이들을 어떻게 다시 포용할 것인가.

그밖에 영화의 즐거움을 증폭시키는 또다른 장치들은 이성재와 유지태의 쫄티에 담긴 미끈한 몸매에 대한 관음증적
즐거움과 짜장면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유오성의 큰 입에 담긴 식욕이다. 아름다운 몸매를 보는 즐거움이 있고
맛있는 요리를 먹는 즐거움이 있으니 어찌 페스티발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랴.

* 2년전 앤솔로지 필름 아카이브에서 상영될 때, 많은 이들이 킥킥대고 웃은 장면 중 하나는 딴따라가 짱께를
시키라고 박영규에게 명령하는 장면이었는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중국음식을 시켜먹는다는 것을 알게 된 관객들은
중국음식과 배달의 함수관계와 범세계적인 코드를 포착해낸다. 전세계 어디서나 중국음식은 시켜먹을 수 있다.
근데 주유소 바닥에 퍼져앉아서 탕수육은 먹어봤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