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를 예언해서 앞으로 일어날 범죄 사건을 예언하는 시스템을 그린 필립 K 딕의 동명 단편 소설입니다. 이 단편의 주인공 앤더튼은 범죄예방국의 국장으로, 소설 초반에 자기 자신이 미래에 일어날 살인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도망자가 된 그는 아마도 그를 구원해줄 수 있을 듯한 한 예지자의 엇갈리는 예언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아 나서지만 그러는 과정은 오히려 그의 미래를 고정시키는 결과를 낳죠. 소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래를 예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패러독스를 교활하게 활용한 복잡한 단편으로, 이야기의 모든 요소들은 그런 아이디어와 플롯을 설명하기 위해 투여됩니다.

일반적으로 필립 K. 딕의 소설들을 각색한 SF 영화들은 원작보다 복잡한 편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제외하면 단편들이 원작이니까요.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시간 반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스토리가 원작보다 단순합니다. 한마디로 각색자들이 원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언의 패러독스 자체에 질려버린 거죠. 그 결과는 조금 황당하기도 합니다. 원작에서 스토리의 핵심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영화에서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대신 영화는 앤더튼에게 개인적 비극과 결함을 부여해 캐릭터를 입체화시키고 예지자 중 한 명에게 상당히 큰 역할을 주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빈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음모를 추가했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각색은 매우 히치콕식입니다. 필립 K. 딕의 원작과 스필버그 영화의 관계는 존 배컨의 소설 [39계단]과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둘 다 쫓기는 남자가 거대한 음모를 파헤친다는 내용의 소설을 각색했지만 원작의 복잡한 음모를 단순화시켰고 그 과정 중 제목에도 사용되는 핵심적인 단서가 의미를 잃어 히치콕식 맥거핀으로 추락했지요.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히치콕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는 흔적은 다른 데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일단 새로 추가된 대부분의 요소들이 히치콕적이죠. 병렬식 구성, 냉정한 영국식 유머, 경찰 공포증 (주인공 자신이 경찰이긴 하지만요), 엉겁결에 같이 도주하게 된 앤더튼과 예지자 아가사의 관계... 심지어 히치콕이 포기했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 듯한 장면도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앤더튼이 조립 중인 차 안에 떨어지는 장면은 히치콕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삽입하고 싶어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 장면과 아주 유사합니다.

영화는 히치콕식 스타일 과시로 가득합니다. 당연하지만 이건 자연스럽게 스필버그식 스타일 과시로 연결되지요. 영화는 굉장히 많은 특수 효과를 동원해 번쩍거리는 미래 세계를 창조하고 있지만, 특수 효과들은 언제나 기능적 위치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몇몇 장면들은 전혀 특수 효과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앤더튼과 아가사가 쇼핑 몰에서 달아나는 시퀀스지요. 이 시퀀스의 댄스와도 같은 완벽한 타이밍과 절실한 감정, 차가운 초현실주의는 매체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거장의 테크닉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스파이더들이 눈먼 앤더튼을 쫓는 장면처럼 특수 효과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에서도 스필버그는 기존 영화 어법에 더 치중합니다. [쥬라기 공원]에서 떨리는 물컵이나 추락하는 자동차가 컴퓨터 그래픽 티라노 사우르스 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처럼,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도 터지는 공기 방울과 카메라가 쭉 훑고 지나가는 아파트 사람들의 인간 군상은 스파이더들 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차갑다는 느낌을 줍니다. 야누스 카민스키가 찍어낸 금속성의 비주얼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어느 사이엔가 스필버그라는 남자의 성격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한 해피엔딩과 종종 터져나오는 감상주의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는 더이상 [이티/E.T]나 [미지와의 조우]를 만들던 남자가 아닙니다. [E.T.]를 만들던 당시의 스필버그는 터져나오는 열정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소년 같은 남자였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만드는 스필버그는 병적인 유머와 차가운 스타일을 과시하는 예민하고 선병질적인 중년 남자입니다.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던 과정이죠. 동화같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A.I]는 결코 [E.T.]와 같은 순박한 동화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톰 크루즈의 캐스팅은 스필버그적이라기보다는 히치콕적입니다. 관객들이 적당히 감정이입할 만한 수퍼스타지요. 그는 언제나와 같습니다. 그의 직설적인 연기가 아들을 잃은 마약중독자라는 캐릭터의 비틀린 면을 충분히 못살린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진짜로 중요한 건 그런 캐릭터의 미묘한 맛이라기보다는 액션을 끌고가는 힘일 겁니다. 그래도 불만이시라면 이 영화가 원래 계획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연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시길.

크루즈의 직설적인 연기는 세 명의 유럽 배우들에 의해 보완됩니다. 막스 폰 시도우와 콜린 파렐은 각각 다른 의미에서 좋은 조연입니다. 막스 폰 시도가 능글맞을 정도로 노련한 고참이라면, 콜린 패럴은 크루즈의 에너지와 적당히 대적할 수 있는 젊은 상대죠. 그리고 예지자 아가사를 연기한 사만다 모튼은 등장하는 장면마다 주변의 모든 배우들을 압도합니다. 그 사람의 커다랗고 무표정한 눈을 바라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에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립 K. 딕보다 스필버그와 히치콕의 분위기가 더 강한 작품입니다. 딕의 팬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좋은 스필버그 영화라는 게 결코 나쁜 뉴스일 수는 없지요. 적어도 올해 나온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들 중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강렬한 오락을 제공해주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전 여전히 이 작품을 [A.I.]처럼 적극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하긴 그럴 필요도 없죠. 거의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고 있으니까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선사하는 현란한 장르 영화의 즐거움은 상당히 높이 평가될 자격이 있습니다.

기타등등

카메론 크로우와 카메론 디아즈가 전철 장면에서 카메오로 나옵니다. 찾아보세요. 그밖에도 흥미로운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앤 라이블리를 연기한 제시카 하퍼는 [서스페리아]의 수지였지요. 기데온역으로 나오는 팀 블레이크 넬슨도 놓쳐서는 안되고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익숙한 사람들은 [콘택트]의 제이슨 앤툰을 보고 재미있어했을 겁니다. [밀레니엄] 3시즌의 주연이었던 클리아 스코트와 [프랙티스]의 스티브 해리스도 찾아보시고요.

대한 극장 7관에서 한 언론 시사회에서 봤는데, 2.35:1의 화면 비율을 살리지 못하더군요. 자막 때문에 왼쪽이 잘려 상영되었어요. 위의 스틸처럼 좌우 대칭이 중요한 장면이 나올 때는 짜증나더라고요. 어떻게 새로 지은 극장에서 이처럼 예민한 부분에 무관심했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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