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예고된 죽음을 부르는 중독-

12월의 마지막 토요일,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토요일! 필자는 그 동안의 정지에서 벗어나 잠깐의 이탈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전철역을 가는 길목에서 벽보에 붙힌 한 장의 포스터와 그 옆 비디오 샵에 있는 또 하나의 포스터가 교차되며 한눈에 들어 왔다. 각기 다른 위치의 포스터이지만 동일한 내용의 포스터였다. 영화<중독>의 포스터였는데 재 개봉관의 포스터와 금방 출시된 비디오포스터가 한 블럭을 사이에 두고 있어 약간은 입가에 웃음을 유발시켰다.

필자가 기억하기론 이 영화의 배급사인 <쇼박스>가 영화 못지 않은 화제를 개봉 전에 모았던 것으로 생각난다. 멀티플렉스 극장인 <메가박스>의 자매회사로 창립 첫 배급영화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올해 10월에 1차 기자시사회장도 메가박스로 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한국영화기자시사회로는 드물게 그 다음날 대한극장에서도 2차 기자시사회를 할 정도로 그 홍보의 열기와 기대치는 컸다.

<빙의>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영화<중독>이 모습을 드러내기 한달 전 개봉한 일본영화 <비밀>을 표절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사실 <비밀>은 1999년에 일본에서 개봉된 점과 부부지간이 부녀지간으로 빙의 현상을 맞췄다는 점에서 시동생으로 그 형태를 다르게 한 <중독>이 약간의 표절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또한 개봉시기도 한달간격으로 이루어져 더 그 논점이 자꾸만 부각 된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관람하고 나서는 절대로 같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충격은 한국영화 <중독>이 <비밀>에 비해 훨씬 더 크다고 하겠다.

그 결말 구조에서 일어나는 반전은 도리어 <중독>이 일본영화에서 느껴지는 강한 여운과 충격을 동반한 꺼림직한 불편함을 좀 더 강하게 수반하고 있다. 그러한 충격의 파장은 일련의 빙의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기본 레테고리를 깨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두가 다 기존의 반전을 상식적으로 예상하고 있을 때 영화<중독>은 반전의 또 다른 반전을 통한 여러 개인이 공통으로 느끼는 정서가 패닉현상으로 유발되어 지고 있다.

개봉 전 영화 <중독>은 이미연과 이병헌의 수위가 높은 노출 장면이 예고된다는 모 일간지의 기사를 통해 약간은 형수와 시동생의 위험하고 금지된 섹스에 초점이 가게되는 위험부담이 남았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장면은 영화 속에서 그다지 비중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간은 슬픈 느낌이 드는 감정을 초래한다.

이병헌의 조금은 절제된 연기에 비해 이미연의 연기는 그다지 변화 없는 노선을 계속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극의 양념과도 같고 영화후반 이 영화의 반전에 결정적 열쇠를 쥐게 되는 박선영의 연기야말로 도리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룹 베이시스의 멤버였던 정재형의 음악은 인물감정의 복선과 극의 흐름을 잘 인도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이끌고 있다.

영화<중독>의 포스터를 가만히 살펴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든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1992년도 작품 폴 버호벤 감독이 연출을 하고 샤론 스톤이 주연을 한 <원초적 본능>의 포스터와 사뭇 비슷한 포맷을 가지고 있다. <원초적 본능>에서는 마이클 더글라스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고, 샤론스톤이 우리를 주시하듯 바라보는 장면이 포스터의 중심내용이었다. 이번 <중독>에서도 이미연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고, 이병헌은 우리를 바라보면 주시하고 있다.

글쎄,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두 포스터에서는 바뀌어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모습과 무엇인가 우리에게 말을 하려는 듯한 또 다른 사람의 모습! 포스터만 보고 이미 그 뜻을 파악했어도 50%정도의 영화를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독>은 나름대로 기존의 방식을 깨려고 노력하려 했으나 그다지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다. 극장에서 놓친 많은 네티즌들은 DVD와 비디오로 출시된 이 영화를 관람하고 그 평가를 각자 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