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김기덕 코드의 종합선물 세트-

11월 중순에 부산국제 영화제가 막 시작되고, 3일 정도가 지난 후 개막 작이었던 김기덕 감독의 작품<해안선>기자시사회가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에서 열렸다. 필자는 문득 이제는 주류에 포함되어 버려진 김기덕 감독의 신작을 접하는 마음에 앞서 조금은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 이유는 조금씩 상업영화에 힙 쓸려 김기덕 감독 특유의 코드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약간은 우려반, 기대반의 마음이 뒤섞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로지 간첩을 잡겠다는 생각으로만 집착되어버려진 강상병은 군사경계지역 안에서 정사를 벌이고 있는 남자를 간첩으로 오인하여 사살한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애인을 잃은 미영은 미처 버리고, 강상병 또한 정신질환에 고통을 받게 된다. 이들을 중심으로 박쥐부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충격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필자는 감독 김기덕을 <조용한 반역의 선동자>라 부르고 싶다. 1996년 자본주의 서울에 이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악어>를 필두로 1997년 야생동물의 본능을 인간에 대입시킨 <야생동물 보호구역>, 1998년 성을 다각도로 살펴본 <파란대문>, 1999년 가학과 피학을 통해 사랑의 실체를 증명하려 했던 <섬>, 2000년 잠재되어 있는 살인 본능을 보여주는 <실제상황>, 같은 해 아픈 우리의 기억 <수취인 불명>, 그리고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을 <나쁜 남자>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 언어세계라고 말하고 싶다. 또는 독립영화에서 보여지는 저 예산의 가치 있는 언어들로 꾸며진 정신세계라고 언급하고 싶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해안선>은 김기덕 감독의 전형적인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다. 점점 미쳐가고 있는 여자, 점점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는 남자, 이런 그들을 바라보며 유희를 즐기는 타자들, 그러한 군상들을 조롱하고 있는 세상! 이러한 레테고리 속에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들의 현재 모습을 발견하려고 한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에 대한 많은 잡음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영화가 나올 때마다 전형 화된 남성 우월 주의 속에서 여성들의 모습은 극히 열악한 힘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는 것이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나름대로 맞는 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여성을 비하하기에 충분한 근거적 요소를 발견할 수 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김기덕 감독에게 손을 들어주게 되는 요인은 아마도 그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라고 하겠다.

그의 시각은 우회적이고 비유적이지만 스트레이트 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은 직선의 개념보다는 송곳 같은 날카로운 칼날의 개념이 더 맞을 수 있다. 그는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더불어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소녀적 발상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의 넘어로 조금은 아쉬운 면도 같이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해안선>까지 관람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너무 전형화된 김기덕 코드에 조금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감독답게 그의 영화에서는 꾸준히 파란 바다물 빛 속에서 점점 붉게 물드는 여자의 모습을 부각시킨다든지, 점점 생명력을 잃어 가는 물고기를 등장시키는 모습 등이 전작에서도 계속 단골메뉴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미장센 처리를 조금만 신경 쓴다면 아마도 다른 시각으로 우리 곁에다가 올 것 같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다작을 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저 예산 독립영화의 성격을 뛴 김기덕 감독의 초심이 계속 유지되는 가운데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이 계속적으로 유지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와 더불어 얼굴 배우라는 멍에 속에서 나름대로 계속적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배우 장동건의 노력에도 박수를 같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