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블레이드 러너]에 버금가는 어둡고 침울한 디스토피아다. 물론 이는 모든 계급에 해당하는 정의가 아니다. 자본가, 지배계급에게 한국사회는 유토피아다. 판 자체가 그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구조화 되어있다. 반면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이다. 자본과 함께 사회를 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인 노동을 몸에 담고 있는 한 강고한 구조를 뚫고 해체할 희망이 사라질 리는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디스토피아의 시민권은 장애우(友)들의 소유다. 판매가능한 노동 가치가 낮거나 0에 가까운 그들에게 생존은 차라리 전투이다. 휠체어를 타고 도심에서의 일상은 쪽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모험과 같다. 목숨을 건 모험이다.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문화는 평범한 살림도구를 저주의 그것으로 재생산한다. 몸에 대한 숭배가 거의 광기에 이르는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거울은 자신의 몸을 비하시키며 원망과 슬픔을 일으키는 저주의 상징이다.

이창동 감독은 이런 잔혹한 디스토피아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한다. 탐지기는 판타지다. 터무니 없는 과장과 감상의 과잉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의 절제되고 게릴라적인 발상의 판타지로 승부하고 있다. 아울러 적절하고 포인트 있는 현실의 반영은 판타지와 멋드러진 균형을 이루고 있다.

판타지의 도움으로 현실을 견뎌내고 긍정하는 즉, 구원 받는 인물은 디스토피아의 시민인 한공주(문소리 분)이지만 판타지의 주인공은 홍종두(설경구 분)이다. 어떻게 보면 홍종두 그 자체가 가히 환상적인 인물이다. 한겨울에 허연 입김을 내뿜는 그는 반팔티셔츠 달랑 한장을 걸치고 도심을 활보한다. 담배 빌려 피고, 어머니 옷 선물도 사면서 집으로 가는 험난한 과정에서 꿋꿋하게 반팔티를 고수하는 그를 통해 영화 초반부터 묘한 기운이 스크린에 어리고 있는 것이다. 각박한 자본주의 생존 시스템에서 나온 가족들의 무심함과 냉대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면 그것들을 간단히 무화시켜 버리는 종두의 무모함에 가까운 순수하고 착한 성격은 지극히 환상적이다. 종두라는 인물의 독특함은 순수하고 착한 성격을 중심으로 하는 환상성과 사회의 낙오자인 그에 대한 가족의 잔혹한 현실성이 모순되어 발화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오아시스]의 판타지는 이런 모순적인 요소들의 기막힌 조화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홍종두는 홍경래의 후손이다, 후손이란다. 양아치 패션에 실실 쪼개는 웃음을 달고 다니는 외모에서 반골의 후손다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지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혜안은 환상성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쭉쭉 뻗은 롱다리에 조막만한 얼굴, 반듯한 이목구비라는 절대미를 넘어서 최소한의 소위 정상(?)적인 몸에 대한 기준마저도 초월해버린다. 뒤틀린 팔다리, 이그러진 얼굴에서 그가 발견해낸 미라는 것은 과장되었다거나 터무니없다고 하기보다는 환상적이라 해야 옳다. 종두는 공주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자신이 찾은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실제로 표출한다. 이 부분에서 위에서 언급한 환상성과 현실반영이라는 모순의 묘한 변주가 재가동한다. 공주에 대한 종두의 성추행 미수장면에는 사회적 낙오자인 건달의 왜곡되고 비뚤어진 성의식, 이기적인 욕망의 분출, 장애우에 대한 인권유린의 개념이 녹아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종두가 일그러진 공주의 몸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육체적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은 장애우에 대한 시선의 건강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인이 아닌 정상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두는 긍정과 부정을 온몸으로 녹아내며 공주와의 사랑으로 판타지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영화 후반에 한 형사가 종두에게 내뱉는 대사 한마디 “그 애한테서도 성욕이 생기더냐?”는 말은 뇌성마비 장애우 한공주에 대한 종두의 환상적인 그러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인식을 긍정하는 강력한 지지발언이 되고 만다.

판타지의 화신인 종두와는 달리 한공주는 우선 극의 진행에서 한발 떨어져서 극중인물이 아닌 문소리라는 배우에 대해 생각케 한다. 한겨울에 한여름 패션으로 시선을 끈 종두와는 달리 문소리씨는 완벽한 뇌성마비 장애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설마 한공주가 문소리씨일까? 라는 의심은 공주가 상상하는 판타지 씬에서 공주자신이 문소리씨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내내 풀리지 않을 정도였다. 온몸을 일그러뜨린 체 쉴새 없이 분절되는 움직임, 음식을 먹는 힘겨운 모습에서 연기자의 열정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나의 왼발]에서 비교적 그럴 듯하게 행한 몸을 뭉게뜨림 (장애우 비하발언이 아님 ^^;;)을 훨씬 능가한다. 상영시간 내내 자신의 외모가 장애우의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결심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듯한 외모로 스크린의 정상에 오른 다른 배우들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비록 제한된 기간이라고 하지만 결코 짧지 않았을 제작기간동안 늘 뇌성마비 장애우와 동일시하며 몸과 생각을 다듬었던 그녀의 의식엔 종두의 의식과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공주가 꿈꾸는 판타지는 화려하지 않은 지극히 소박하고 귀여운 판타지다. 그러나 힘에 버거운 슬픈 판타지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종두의 판타지와 맥을 같이한다. 일련의 상상은 현실을 역설적으로 반영한다. 사회 부적응자와 뇌성마비 장애우 연인이 자신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은 너무나 좁다. 허용된 공간에서도 공주 자신의 몸의 한계로 비장애우들처럼 온전히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기가 힘에 버겁다. 그 때마다 공주의 일그러지고 분절되는 움직임은 그런 안타까움이 절절이 배어나온다. 이즈음에 판타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판타지가 아닌 두 사람의 사랑에 관한 내적인 진실이며 곧 정확한 현실의 반영이 된다. 공주가 비장애우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벌이는 연인의 장난, 사랑노래, 투정부리기는 그 둘이 실제 현실에서 나눈 내적 체험의 실제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 둘의 사랑을 안타깝고 슬프게 바라보는 느낌이란 것은 비장애우들인 우리의 태도임이 밝혀진다. 왜냐면 오아시스 그림을 모방한 사랑의 축제 상상에서 두 사람은 키스로 사랑을 확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들에게 있어 슬프기보다 행복했던 것이다. 한공주의 사랑에 대한 판타지는 다양한 이해의 여지를 주고 있다. 그것을 장애우로서 겪는 소녀의 슬픔에 대한 상상적 소망의 표현으로 이해하는가 아니면 장애우가 아닌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인으로서 느끼는 행복감의 환상적 표현으로 이해하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있다. 헷갈리면 관객 자신의 시각을 리트머스 시험지로 테스트해보면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육체로 확인하며 공유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첫경험을 하면서 부들부들 떠는 일그러진 한공주의 몸부림과 부정확한 신음만이 보이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의 몸을 받고 느끼는 희열에 찬 몸놀림과 교성이 보이는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이런 교묘한 질문으로 비장애우들을 당혹케 하는 감독은 짖궂음을 맘 편하게 수용할 수 있는 그리고 감동적인 피날레로 사과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랑에 굶주린 한 소녀의 척박한 삶에 위안이 되어준 환상의 공간 – 오아시스 그림은 이제 종두라는 사랑하는 남자와 키스를 경험한 아름다운 추억의 상징이 되었다. 그 그림을 그림자로 검게 드리우는 나무를 가지치기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물론 판타지의 화신 종두가 그 역을 맡는다. 종두의 징역살이는 걱정하지 말라. 판타지의 세계에선 단 하루도 안되게 짧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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