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팅 라이크 베컴]의 감독 거린더 차다를 직접 만나보면 굉장히 수다스러운 인도 아줌마일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영화나 전작인 [왓츠 쿠킹]이나 모두 참 수다스러운 영화거든요. 하지만 여기서 '수다스럽다'라는 말은 주인공들이 우디 앨런 캐릭터들처럼 끊임없이 종알댄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뒤섞고 튀기고 볶아서 스크린 위에 올려내는 감독의 방식이 무척 수다스럽다는 말이죠.

하긴 거린다 차다가 다루는 소재는 그런 수다가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관심있는 주제는 다민족 사회의 소통과 충돌이니까요. 처음부터 북적거릴 수밖에 없는 주제죠. 게다가 이 아줌마가 그냥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주기만 할까요? 어림 없는 소리죠. 차다는 여기에 대해 할 말이 굉장히 많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슈팅 라이크 베컴]은 축구 영화입니다.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축구영화죠.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축구를 선택한 주인공, 팀원간의 오락가락하는 우정, 반쯤 포기했던 주인공이 후반전에 짠하고 나타나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결말까지요. (설마 이걸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여기서 다른 점은 우리의 주인공이 여자아이이고, 인도 이민자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넘어야 할 장벽이 두 겹인 셈입니다.

그 때문인지, [슈팅 라이크 베컴]에서 축구 경기의 비중은 생각만큼 큰 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공 제스는 축구를 하면 그냥 행복합니다. 축구 경기 자체에 집중했다면 드라마고 뭐고 없었을 거예요. 드라마는 축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축구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집안의 반대, 문화 충돌, 암암리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과 같은 것들이 제스의 진짜 상대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정공법으로 다루었다면 무척 진지한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차다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사람이 너무 좋죠. 차다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세계를 전쟁터로 보지 않습니다. 다소 걸리적거리긴 해도 즐거운 놀이터나 사교장쯤으로 생각하죠. [슈팅 라이크 베컴]의 세계는 가능성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사람들이 그 세계의 다채로움을 즐길 수 있는 방법만 터득한다면 말이에요. 비교적 제스의 시선에 고정된 영화이면서도 그처럼 분주하게 사람들과 장소를 오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영화엔 적으로 그려지는 인물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장르 관습에 따라 너무 수월하게 흘러간다는 느낌도 들고요. 주제를 따르다보니 이야기와 대사에 설교의 냄새도 상당히 풍겨요. 관용과 포용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연설을 듣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이것들이 그렇게 신경에 거슬리지는 않는데, 그러기엔 이 영화가 너무 즐겁기 때문입니다. 만드는 사람들도 무척 흥겨웠을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차다는 정말로 자기가 속해있는 세계와 삶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영화 속에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장르 클리셰들도 차다의 에너지와 흥에 휩쓸려 흔들리는 도중 뻣뻣함을 꽤 잃습니다. 매서운 승부 세계판 대신 신나는 파티에 초대받아 한바탕 몸을 흔드는 기분이에요.

인도인 감독이 만든 이 작은 영화가 영국에서 국민 코미디 취급을 받고 있는 이유도 축구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가끔 편견과 차별의 흔적이 묘사되긴 하지만, [슈팅 라이크 베컴]이 그리는 다민족국가 영국은 참 신나는 곳입니다. 제가 영국인이었다고 해도 이 영화가 묘사하는 옛 제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능성에 괜히 우쭐했을지도 몰라요. 네, 정말로 이 이미지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을 겁니다.

기타등등

정말 키라 나이틀리는 나탈리 포트먼에서 위노나 라이더로 변신하는 중이더군요. 헤어스타일 때문인가? 나이를 더 먹어서? 모르겠어요.

조나단 리스-마이어스는 여전히 목석이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호감가는 '인간'을 연기하는 걸 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 꽤 재미있었습니다.

줄리엣 스티븐슨이 줄스의 엄마로 나오더라고요! 전혀 정보 없이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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