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야구단.

-1905년, 야구배트로 독립운동에 나서다-

가문의 전통과 봉건적 시대환경의 제약이 파도와 같은 큰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 남자로 하여금 자기의 위치를 깨달게 한다. 일제강점기에 있던 1905년, 자기 안에 있던 자유와 평등, 권리를 조금씩 찾아가게 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그다지 무겁지 않은 영상으로 접근하는 영화 YMCA야구단, 그렇게 이 가을, 불게 물든 가을 단풍처럼 우리 곁을 서서히 스며들어간다.

선비 이호창은 아버지의 서당을 물려받을 시기에 왔다. 그러나 학문보다는 운동에 더 관심이 많은 호창, 우연히 정림양을 만나게 되면서 축구가 아닌 야구에 빠지게 된다. 정림을 중심으로 호창, 광태, 상인, 양반, 어린 형제들이 모여 조선최초의 YMCA야구단을 만들게 된다. 연승행진을 가도 하는 YMCA야구단 앞에 일본군과의 숙명적인 한판 대결이 펼쳐진다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요골자다.

이호창 역을 맡고 있는 송강호는 연극무대 '비언소'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와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물에 빠진 날'에 조연 급 엑스트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 후 지금은 캐나다로 이민을 간 송능한 감독의 '넘버3'에서 일자무식의 코믹연기는 그를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한다. 그 이듬해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은 그의 연기가 코믹연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의 연기변신은 강제규 사단의 '쉬리'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으나 송강호의 캐릭터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무수한 말들을 일순간 잠재운 작품이 2000년도 작품 '반칙왕'이다. '조용한 가족'에서 인연이 있었던 김지운 감독과 다시 손을 잡고 송강호식 특유의 코미디와 스포츠가 절묘하게 부합되었다. 그후 2001년 최고의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 장교 역을 단순한 코믹이 아닌 진지함으로 문안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올해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연기영역을 넓혔다. 이번 작품인 'YMCA야구단'에서는 다시금 그가 코믹연기의 대가임을 입증해 주는 작품이다. 이호창 역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개화기 속에 갈등하는 우리민족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송강호는 그 캐릭터를 인간미 있는 모습으로 담아내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조선 최초의 야구단에 여자감독 민정림 역을 맡은 김혜수는 그 동안 영화 '닥터 봉' 이나 '신라의 달밤'과 TV드라마 '국희'를 오가며 보여주었던 강인한 여성상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 영화 '쓰리'에서처럼 연기변신은 아니지만 그에게 제격인 캐릭터이다. 박중훈 주연의 '세이예스'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주혁은 최근 드라마 '라이벌'을 통해 대중들과 좀 더 가까워 졌고, 배테랑급 연기자인 김무생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연기에 주목하게 됐다. 투수 오대현 역할도 조연 급이지만 주연에 밀리지 않은 연기를 구사하고 있다. 포수 류광태 역할을 맡고 있는 황정민은 이 작품보다 나중에 개봉하는 영화'로드무비'를 통해 더 그의 연기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그전에 작년에 개봉한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 와 같은 작품과 연극을 통해 그는 차세대 연기파 배움임을 예고한다.

그밖에도 꼬마 가수 랑현, 랑하나 감초연기자 이대연, TV와 CF를 통해 나이를 거꾸로 먹는 신구선생과 임현식 선생의 코믹연기도 영화에 힘을 실어주는데 한몫을 더한다. 또한 일본배우인 간장선생의 이브마사토와 스즈키 카즈마도 출연해 극의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김현석은 '대행업'을 통해 대종상 신인 각본 상을 수상한 경력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연출력도 나름대로 인정받을 만하다. 다만, 극의 후반에서 느껴지는 클라이맥스는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느껴지던 분위기와 사뭇 비슷해 약간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1905년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의상과 미술, 소품, 오픈세트 등의 노력이 장면 하나 하나 에서 눈물겹도록 엿보이며 그러한 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을 더한다. 헐리웃 영화 처럼 속도감 있는 전개감도 한국박스오피스에서 '트리플엑스'를 누를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강호의 극중 대사 중에 아버지인 신구에게 "제 비록 유생으로는 이름을 알리지 못한 뜨내기 선비일 뿐이오나, 베쓰볼 선수로서는 조선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듭니다. 유생으로 치면 퇴계 이황 선생이나 서애 유성룡 선생정도 된다라고 생각하시면..." 이라는 부분이 있다. 송강호의 선비로서의 포기보다는 좀 더 자기의 현실과 부딪힐 수 있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며 이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YMCA야구단의 멤버들을 살펴보면 선비, 친일파 아들, 잘난 체 하는 양반, 가난으로 어린 나이에 지게 짐을 지는 쌍둥이 형제, 명성황후의 호위무사, 방망이를 깎는 장사꾼 등 서로 각기 신분과 직업, 나이, 성격이 서로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스포츠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곧 모든 것을 초월하고 평등한 자유와 의지에서 운동은 출발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엔딩 부분에서 일본군인들에게 짓밟히는 우리민족들에게 깜짝 출연하고 있는 마부청년 조성우가 암행어사마패를 하늘로 치켜세우며 "암행어사 출도여!" 라는 부르짓음은 곧 일제강점기에서 잊혀졌던 우리민족의 자존심이며 정체성이다. 이는 동시에 암행어사의 꿈을 포기한 송강호가 퇴계 이황 선생 보다 유명한 조선 최고의 4번 타자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조선인의 희망과 꿈에 대한 자각이다. 잃어버리며 잠재우고 있던 우리의 민족성이 마패를 통해 다시금 광복에 대한 의지를 표출시킨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월드시리즈가 거행되고, 한국에서는 PO시즌을 마치면 곧 한국시리즈가 개최될 것이다. 야구를 비롯해서 축구, 농구 등 스포츠는 희망을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다. 올 가을 100년 전의 우리조상들의 치열하면서도 꿈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며 그와 동시에 "꿈은(★) 꼭 이루어진다."라는 월드컵 때의 문구는 단지 축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에 공통으로 해당된다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