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러분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선택하기 불안한 이유가 있다면? 미달이 아빠 박영규의 순풍 산부인과 재방송때문도,육남매 엄마 장미희의 똑사세요 리바이벌이 연상되서도 아니다. 바로 김민종과 더불어 한국 영화 사상 최악의 쪽박 메이커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표형의 이름이 주인공 목록에 너무 당당하게 올라있기 때문이다.

인표형은 물론 멋진 배우다. 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데뷔한 이래 손가락 하나로 뭇 여자들을 패닉 상태에 몰아넣는 가공할 느끼함을 선보이며, 신성일 이후 그 계보가 희미해졌던 한국 식용유-참기름 업계의 차세대 적자로 인정받는 닭살연기를 보여주셨다.

군대갔다와서 개관천선했는지 왕초-그대 그리고 나- 불꽃-그 여자네 집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인간미와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들을 맡으며 브라운관에서는 흥행보증수표로 자리잡았다.

러나 많지않은 그의 영화쪽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면, 이쪽 업계 진출을 절대 말리고 싶을 정도로 확률 백퍼센트의 흥행필패를 기록하며 다수의 영화제작자들을 도산 일보직전 상태로 몰아넣는 죽음의 부도수표였다.

짱-닥터K-아이언 팜(군대가서 찍은 알바트로스는 빼자...이건 군바리 시절에 노동착취로 찍은 홍보용 영화니까) 등등 연기는 둘째치고 도대체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있기는 한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90년대 한국 갓뎀 무비계의 대표작들은 모두 인표 형님의 손을 거쳐갔다. 뭐 물론 극장가서 본 적도 없고, 비디오로도 내 돈주고 본 건 아니니 개인적인 손해는 전혀 없지만, 항상 인표형의 영화는 공통적으로 상영시간 20분 이내에 이 작품을 끝까지 인내하고 봐야 하는건지 심각한 존재론적 회의에 빠뜨리곤했다.

그러나 적어도 보리울의 여름에서는 인표 형의 선택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이전 작품들처럼 인표 형이 원맨쇼를 펼쳐야하는 영화가 아닌데다, 이미 웃기고 망가지는 쪽이라면 독보적인 영규 아저씨가 미리 자리잡고 인표 형의 부담을 덜어준다. 더구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기성 배우들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이다.

이 영화는 <집으로>, <선생 김봉두> <동승>등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6시 내고향' 컨셉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위의 작품들은 고향의 이미지를 안겨주는 시골과, 순수함으로 상징되는 아이들의 동심을 대비시키며 인간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가진 ' 잊혀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영화가 전작들과 차별화된 점은, 성당-절이라는 상이한 요소를 통해 분명한 대칭구조를 만들고, 축구라는 과정을 통하여 서로 화합해간다는 구성에 있다.이런 대칭구조는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 <두사부일체>의 조폭-고등학교, <달마야 놀자>의 조폭-스님 같은 전혀 안 어울리는 이질적인 요소의 대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이다. 종교라는 컨셉을 사용했지만, 집단을 대표하는 이름으로의 성당-절일 뿐 영화에서 종교적인 색채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축구는 의심할 나위없이 세계에서 가장 글로벌한 스포츠이다. 세대와 인종,종교와 사회를 넘나드는 축구의 무제한성은 공존의 보편적인 가치를 설명하기에 무엇보다 유용한 컨셉이다. 영화는 무엇보다 축구 예찬론이나 홍보물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이 작품이 축구 영화로 소문이 나면서 몽중인이 격려차 촬영현장인 분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근데 당시 모 방송사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촬영현장에 나와있다가 몽중인을 인터뷰했었는데 그 리포터의 멍청한 질문이 압권이었다.

리포터-정회장님은 축구에 참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몽중인-???........아니,축구협회 회장이 당연히 축구에 관심이 많아야지.
리포터-........(몽중인이 조기축구회 회장쯤 되는 줄 알았나 부다.).......)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한 편이다.인표는 간만에 제정신이 박힌 배역을 골랐다. 초보인 조신애(얼굴은 이쁜데 이름은 발음하기 어째 민망한)와 실제 극중 배경인 분교 학생들을 그대로 캐스팅한 아이들의 연기는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배우들의 개성보다는 이야기와 배경그림이 더 중요한 영화인만큼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코믹 파트를 사실상 전담하고 있는 영규 아저씨의 불안정한 애드립이 그나마 돌출 요소다.

이 영화는 당연히 착하디 착한 건전 영화다.악당이나 팥쥐등은 눈을 씻고 봐도 나오지 않는다. 스님으로 나오는 영규 아저씨 측과 신부로 나오는 인표 형 측 사이의 실갱이등도 요즘 기준으로 보면 가벼운 농담따먹기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문제는 영화가 너무 착하다보니,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요즘 관객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심심한 영화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카고나 와사비같은 영화를 보다가 이 작품을 보니, 80년대 문세 삼촌의 주옥같은 발라드 앨범(사랑이 지나가면.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등) 구석에 낑구어져 있던 '어허야 둥기둥기'...같은 건전가요를 들었을때의 이질감이 떠오름은 왜일까...

김봉두와 집으로..를 본 사람이라면 굳이 이 작품까지 봐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대체로 무난하기는 하지만 감동과 재미의 밀도는 가볍고 상투적이다.한국 영화라는 점을 빼면 꼭 극장까지 가서 봐야할만큼 악센트가 뚜렷한 작품이 아니라는게 아쉽다.

사실 이 영화는 한발 늦은감이 있다. 욕을 먹더라도 시류에 편승하자면 월드컵이 한창때이던 작년 여름쯤에 타이밍 잡아서 개봉했어야 했다. 이미 김봉두와 동승 등에게 올시즌의 6시 내고향 컨셉도 선수를 빼앗겼다. 가슴이 아픈건 인표 형이 나오는 영화는 늘 이렇게 타이밍이 늦어서 뒷북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표 형 실망하지 마시라. 흥행필패는 계속된다 할지라도 이제 더이상 당 장님 코끼리 만지는 허접한 배역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일보 전진이라 평할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