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투 퍼디션]을 보면서 전 계속 만화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영화의 모든 부분이 공들여 구도를 계산한 뒤 프레임안에 밀어넣은 느낌이 강하니까요. 동명인 그래픽 노블에서 얼마나 많은 비주얼을 빌려왔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만화책의 느낌이 든 진짜 이유는 비주얼보다도 내용에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전 이 작품이 살아 숨쉬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톰 행크스나 폴 뉴먼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고정된 스타일로 그려낸 그림이나 인형에 더 가까웠습니다. 영화를 볼 때 제가 본 건 멋진 비주얼이었지 사람들은 아니었던 거죠.

[로드 투 퍼디션]은 갱생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아버지가 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여러분도 예고편을 통해 알고 있을 겁니다. 나중에 후환을 두려워한 동료들이 아버지와 가족을 몰살하려하고 그 와중에 어머니와 동생이 죽는다는 건 알고 계신지요? 영화의 나머지는 가족의 복수를 하고 아들을 암흑 세계에서 탈출시키려는 아버지의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로드 투 퍼디션]은 갱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장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드 투 퍼디션]은 어쩌다보니 장르에 속해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장르의 속성과 요소들은 [로드 투 퍼디션]의 전부입니다.

다른 영화들을 예로 들어보죠. 오리지널 [스카페이스]나 [공공의 적]에서 갱들은 관객들과 동시대를 산 실제 인물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양식화된 연기와 스토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그건 그 시대의 이야기였습니다. [대부]와 [좋은 친구들]과 같은 영화에서 그들이 살았던 과거는 그 자체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꿈틀거리는 역사의 일부였습니다.

하지만 [로드 투 퍼디션]에서 1930년대초의 시간대는 아무런 실제적 의미가 없습니다. 이 배경은 그리스 비극의 올림푸스산처럼 고도로 양식화된 무대 이상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설리번 부자가 벌이는 모험담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장르에 의해 고정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도 대부분 한문장으로 끝이 나고요. 그들은 이 장르안에서 끝도 없이 반복된 이야기를 조용하고 신중하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나름대로의 강한 힘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야기가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죠. [로드 투 퍼디션]에서 설리번 부자의 이야기는 마치 천천히 진행되는 제의 같습니다. 이 영화가 주는 긍정적인 감흥은 우리가 그들의 행보와 운명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런 면에서 [로드 투 퍼디션]은 운명 비극입니다. 톰 행크스나 폴 뉴먼, 주드 로가 보여주는 정중하고 차분한 연기는 이런 예고된 비극을 뒷받침해줍니다.

문제는 영화가 그 위에 무언가를 더 얹고 있느냐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로드 투 퍼디션]은 도덕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어떤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없고, 일반적인 관점에 특별한 깊이를 더해주었다고도 할 수 없어요. 너무나도 완벽하게 짜여진 장르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장르가 하는 말 이상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로드 투 퍼디션]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좋은 배우들 덕택에 정서적 힘도 상당하고요. 하지만 정말 어떤 걸작이 되기엔 장르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군요.

기타등등

1. 영화 엔드 크레딧에 안소니 라팔리아에게 감사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라팔리아는 이 영화에서 카포네를 연기했었답니다. 나중에 카포네 나오는 장면들이 모두 잘려나갔다지만요.

2. 이 작품의 스토리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 시리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영화 속의 존 루니 John Rooney와 그의 아들 코너 Conner는 실제 갱스터인 존 루니 John Looney와 코너 루니 Conner Looney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들의 종말은 영화와 같지 않았습니다. 코너는 22살 때 총격전 중 아버지 옆에서 사망했고, 존 루니는 25년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8년 형을 살고 나온 뒤 1947년에 80살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편하게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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