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X.

-첩보원 007, 스턴트맨으로 돌아오다-

화려한 패션문신과 함께 근육질의 로맨스를 즐기는 남자, 트리플 원!
스포츠카를 타다가 중도에 다리위로 뛰어내려 멋진 고공 번지점프를 하면서 과감하게 차를 버리는 남자, 트리플 투!!
눈사태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도 스노우 보드로 멋지게 탈출하는 남자, 그 이름은 트리플 엑스!!!

요란한 추격 신에 이어 덩치 좋은 근육질의 남자가 페라리를 몰고 200미터 높이의 다리 위에서 자동차 번지를 시도한다. 짜릿한 고공낙하 곡예 후 낙하산을 펴고 유유히 사라진 그의 이름은 '젠더 케이지'다. 인터넷에 생방송 된 이 장면은 전세계 네티즌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축하 파티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들이닥친 특수부대는 젠더 케이지에게 신경 안정제를 쏜 후 잠들게 한다. 예측 불가능한 테스트를 통과한 젠더는 '트리플X'라는 코드명을 가지고 프라하에서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한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젠더케이지 역을 맡은 빈디젤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 아니다. 국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새롭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작년에 개봉하고 올해는 비디오로도 출시된 영화 '분노의 질주'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다크호스'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미 그는 준비된 스타다. 7살의 나이에 영국의 극단무대에 데뷔했고, 그후 3천 달러의 저 예산으로 직접 제작, 주연, 감독한 단편영화 '멀티페이셜'이 1995년 칸느영화제에 상영이 되었다. 여기서만으로도 그는 연기와 더불어 연출력을 가진 잠재력 있는 배우라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을 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작가 로버트 로다트에게 그를 위해 카파조 일병 배역을 집어넣으라고 했으며, 그 후 '피치블랙'에서 보여준 심리적 고뇌에 빠진 악역 연기로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타 스탤론과는 또 다른 느낌의 차세대 근육질의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이언 자이언트'에서는 목소리 연기만을 담당하기도 했으며, '분노의 질주'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스트리트 레이싱계의 전설적인 인물 도미닉 역을 맡아 열연했다.

4개월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트리플 X'의 위험한 액션 신에 대부분을 직접 소화해냈다. 날카로운 눈빛과 근육에 비해 의외로 귀여운 구석을 지니고 있는 그는 '트리플 X'에서 술, 담배조차 하지 않는, 자기관리가 투철한 비밀요원 젠더 케이지 역을 맡음으로서 1차원적인 액션연기를 벗어난, 배우로서 지녀야할 다양한 연기를 선보이며 3차원 멀티액션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신의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트리플 X'의 속편 계약서에도 이미 사인을 해 놓은 상태이다. 파워 풀한 액션연기에 대비되는 그의 입에 무엇을 물고 있는 듯한 어눌한 말투와 섹시한 미소는 그를 2천만 달러 클럽으로 입성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빈디젤과 상반되는 어거스터스 기브슨 역을 맡은 사뮤엘 L 잭슨은 덴젤 워싱턴과 함께 흑인을 대표하는 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90년대에만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한때 알콜 중독으로 연기자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알콜 중독자 역을 맡아 열연한 '정글피버'로 칸느영화제 남우조연상과 뉴욕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구가하게 된다. 뒤집어 보면 전화위복인 셈!!! '펄프픽션'의 소름끼치는 악역부터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의 제다이 의원 역까지, 그는 액션과 느와르, 코믹과 SF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다이하드3', 리메이크작 '샤프트', '네고시에이터' 등의 작품을 통해, 백인 우월 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흑인들의 현실과 권리에 대한 날카로운 독설을 늘어놓으며 배우를 넘어선, 흑인으로서의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지닌 인물로도 유명하다. 어쩌면 영화계의 '킹 목사'라고나 할까?! '언브레이커블'에서의 그의 연기는 영화의 인지도보다도 그의 연기력을 더 주목하게 했다.

옐레나 역을 맡은 아시아 아르젠토는 1975년 로마 태생이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 감독인 다리오 알젠토와 배우인 다리아 니꼴로디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9살의 나이에 곧바로 영화계로 진출한 정통연기파 배우이다. 옐레나의 신비롭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는 이미지에 걸 맞는, 색다른 여주인공을 물색하던 롭 코헨 감독의 캐스팅 조건 1순위는 바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녔으면서도, 헐리웃에서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7개국, 500여명 여배우들의 프로필을 둘러보던 롭 코헨 감독은 유럽의 예술영화에서 주로 활동해 온 그녀의 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들의 만남은 곧바로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5년 간 무에타이를 익혀온 준비된 액션히로인이다. 007에서의 '본드 걸'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악역 요기 역에 마톤 소카즈는 뉴질랜드 연극계에서 연기경력을 시작하면서 세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에 출연하여 자신의 명성을 쌓아간다. 유럽 영화계에서 활동하던 그가 헐리웃으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반지의 제왕'에서 셀레본 역을 맡으면서부터이다. '트리플 X'에서는 냉전과 폭력의 역사 속에 무참히 짓밟힌 한 개인이자, 반정부주의 러시아 급진세력의 우두머리인 요기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보다 완벽한 연기를 위해 캐스팅 된 직후, 러시아로 건너가 1달 동안 현지 인들과 생활했으며, 촬영장에 개인 발음 교사를 두었다는 일화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연출을 맡은 롭 코헨감독은 미국 내 가장 다재 다능한 감독 중 하나로 손꼽힌다. 30여 년의 영화 인생을 살아온 그는, 대중문화의 첨단에서 폭넓은 주제와 표현감각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여 왔다. 숀 코네리의 목소리 연기로 유명한 영화 '드래곤하트'에서 보여준 판타지 장르를 활용한 참신하고 유머러스한 발상부터, '데이라잇', '분노의 질주' 등의 감각적이고 현란한 연출력까지, 그가 보여주는 독특한 연출세계는 대중문화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라스베가스 상류층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의 전작 '랫 팩'으로 미국의 촉망받는 TV 필름 감독 협회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분노의 질주'의 흥행성적으로 명실공히 헐리웃 최고 흥행감독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헐리웃 최고 인기배우인 빈 디젤을 주연으로 기용한 스파이액션 블록버스터 '트리플 X'는 그 동안 자신이 선보여온 대중문화에 대한 통찰력이 집대성된 최고의 기대작이다.

피부 표면과 속 피부 사이에 색소 등을 고의로 주입해 그림이나 문자 등을 새겨 넣는 타투와 피어싱,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여러 가지 묘기를 펼치는 레저스포츠인 익스트림 스포츠등 형벌과 방어의 의미에서, 개성과 도전적인 자유의 상징으로 21세기 007는 그렇게 우리 곁으로 변모되어 다가왔다. 하지만 기존의 스파이 액션영화의 패턴과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액션과 로맨스를 적절히 조화시킨 것하며 본인이 원하지 않는 가운데 스파이가 된다는 것과 신체의 내부에서 벽까지 관통하는 최첨단 망원경인 '이글아이'와 3종류의 신경망 파괴 바이러스와 폭발물을 장착한 특수 건의 등장 등 007에서 감상했던 특수무기들이 어김없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 자동차 번지 장면에는 지상과 공중, 헬기와 떨어지는 스포츠카에까지 24대의 카메라가 동원되어 화려한 액션을 마음껏 선보인다. 거기에 더더욱 생생한 액션을 위해 필름 밖에서 함께 뛰어내린 3대의 스턴트 카메라의 등장이다. 그리고, 눈사태의 산을 뒤로하고 총알처럼 내려오는 스키보드 신은 그야말로 컴퓨터 그래픽의 압권이다. '트리플 X'가 미국 내 개봉되자마자 전미흥행 1위는 물론이거니와 2주 연속 1위의 기염을 토했다.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싸인'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대 폭발적인 파워를 보인 것이다. 관객의 60% 이상이 초감각적인 20대 초 중반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분명 숀 코넬리 주연의 007에 대해 아련한 추억을 가진 50-60대 장년층에게는 먹힐지가 미지수이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도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20대가 영화관객의 주고객 층이라는 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