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9.

-냉전주의 시대에 슬프고, 가슴아픈 보고서.-

최근 북한의 새로운 핵 개발에 대한 깜짝 발표에 대해 우리 나라를 비롯해서 미국 등 세계의 반응은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 발표가 있기 몇 주 전 지금은 러시아란 이름으로 바뀐 구 소련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한편이 개봉됐다. 핵 잠수함을 소재로 해서 당시 냉전상태에 있던 소련군인의 참혹한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K-19'의 영문 부제목은 'WIDOWMAKER'다. 한글로 굳이 해석하자면 '과부(미망인)제조기'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원제에서도 느껴지듯이 한번 작전수행을 떠난 'K-19잠수기'는 많은 희생자를 남긴다는 의미를 넌지시 내포하고 있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제작된 소련 최초의 핵 잠수함 'K-19'호는 결함 투성이로 건조 과정부터 수많은 사상자를 내어 과부제조기로 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 당국은 서둘러 출항할 것을 종용하고, 이에 'K-19'호에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출항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함장 '미하일'과 당의 명령을 우선시 하는 함장 '알렉세이'가 사사건건 충돌한다. 결국 함장 '알렉세이'는 'K-19호'의 결함을 묵인한 채 출항을 강행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훈련 속에서 미사일 테스트 발사는 성공하지만 원자로 냉각기에 구멍이 생긴다. 그로 인해 'K-19호'는 곧 거대한 방사능 폭발로 이어질 심각한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전세계는 3차 대전의 위협에 휩싸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알렉세이 보스트리코프 함장 역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헐리웃 스타다. 1966년 'LA현금탈취 작전'에서 호텔 사환 역으로 단역 출연함으로써 영화에 데뷔했고, 1977년 '스타워즈'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블레이드 러너', '지옥의 묵시룩'과 같은 전쟁, SF, 어드벤처 등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1985년 영화 '위트니스'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러브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90년대 이후 톰 클랜시의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 '패트리어트 게임'이나 '긴급명령' 등에서 열연을 했으나, 예전과는 달리 고정된 이미지를 보여 조금은 변화가 필요했다. 21세기 들어와 '왓라이즈 비니스'와 더불어 영화 'K-19'는 그에게 새로운 카리스마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충성심이 강하고 규율과 의무에 엄격한 공산당 소련장교역할을 해리슨 포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소화해 내고 있다. 만60세라는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20대의 혈기 왕성한 연기실력을 선사하고 있다.

그와 대립적인 인물인 미하일 폴레닌 부함장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 리암니슨 또한 결코 해리슨 포드의 연기실력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1981년 영화 '엑스칼리버'로 데뷔한 그는 1986년 '미션', 1990년 '다크맨', 1993년 '쉰들러리스트', 1994년 '넬' 등에서 연기실력을 인정받았다. 드디어 그는 1998년 영화 '마이클 콜린스'에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부하들의 안전과 합리적인 임무수행을 하면서 동시에 끝까지 무리한 주장을 하는 상관에게 복종하는 중간적 입장을 성실히 연기하고 있다.

그밖에도 원자로 담당 장교인 바딤 라트첸코를 맡고 있는 배우 피터 사스가드 또한 냉각기의 구멍이 자기의 실수에 인한 것으로 고통스러워하다 최후의 냉각기 용접을 마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영화 '아이언 마스크', '데드맨 워킹', '소년은 울지 않는다', '센터 오브 더 월드'에서 그 동안 쌓은 연기실력을 여기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K-19'의 연출은 놀랍게도 여성 감독 캐슬린 비글로우가 맡았다.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의 전 부인이기도 한 그녀는 '죽음의 키스'로 데뷔했다. 제임스 카메론이 기획하고 그녀가 연출한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스웨이지 주연의 '폭풍 속으로'는 그녀를 여성감독이라는 이름대신 파워 풀한 남성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 시키는데 충분했다. 그후 '스트레인지 데이즈'와 최근에 개봉한 숀펜 주연의 영화 '웨이트 오브 워터'를 통해 그녀의 연출력은 자타가 공인하게 됐다. 이번 영화 'K-19'는 관록 있는 베테랑 급 남자감독들도 해내기 힘든 연출력을 보여주었으며 여성의 섬세한 심리전을 남성영화에 삽입시켜 함장과 부함장의 팽팽한 심리전을 긴장감 있게 잘 그려냈다. 각본을 맡은 크리스토퍼 카일은 캐슬린 비글로우 감독의 전작 '웨이트 오브 워터'의 각본을 썼던 사람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USS 조지 워싱턴 호'에 대항하는 소련의 핵 잠수함 'K-19호'의 방사능 폭발에 대한 대원들의 사투를 실화에 근거하여 제작했다. 1억2천만달러의 제작비와 헐리웃 톱스타의 출연임에도 이 영화는 기존의 미국영웅주의에서 탈피하고 있다. 소련과 미국의 양대 정상으로 대두되었던 냉전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흑백논리를 벗어나 소련군인들의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그리고 있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난다. 공산당은 붉은 뿔이 달린 악마로 표현되고 민주주의에 있는 사람들은 천사로 분리되던 이분법적인 논리가 더 이상 이 영화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소련의 공산주의 지배체재 하에서 국민들은 단지 당의 명령에 복종할 뿐 더 이상의 이유나 질문은 없다. 영화는 그런 힘없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군인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핵 잠수함의 원자로 냉각기에 구멍이 생겨 소련군인들이 그 구멍을 막아내는 용접작업 장면은 실로 이 영화의 압권이다. 그들이 방사능에 대비한 피복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방사능에 노출시키면서 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구멍을 막은 것은 세계라는 울타리도 아니요, 국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잠수함에 있는 '우리'라는 동료의식과 소박한 인간애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여성 감독 캐슬린 비글로우도 그 점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전 남편인 제임스 카메론이 바다 위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을 통해 사랑을 전달했다면 부인 캐슬린 비글로우는 바다아래 잠수함 'K-19'를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 'K-19'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또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시간이 지나도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나도 이념과 체재는 변한다 해도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