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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 (1938, Modern Times)
미국 / / 코미디 / 89분 전체관람가 /


출연: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
각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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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 비극론 (8/10)

글: 박용하
2002년 12월 13일

조회: 9833

찰리 채플린은 신화가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다. 우리 시대의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전 시대에 그는 분명 신화였었다. 그렇게 멀어져간 신화를 다시 되살리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다시 비디오가게에 찾아가서 그의 영화를 보는 것, 그것으로도 그는 다시 살아서 나에게 온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였다는 것, 영화가 좋다는 것은 그런 것에 달려있다. 분명 모든 이들은 자신이 죽으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영화는 그것을 영원에 가까운 시간에 두게 만든다. 그 우스꽝스러운 콧수염과 앞코가 삐죽이 나온 커다란 구두, 그리고 사이즈가 안맞는 양복 웃옷. 채플린을 되살리는 동안 느꼈던 것은 '웃음'이였다. 그리고 그 '웃음'이 던지는 진한 슬픔, 그것이 느껴졌다.

1. 페이소스라는 어려운 말 대신에

코미디의 강점은 무엇인가? 코미디의 강점을 시사에서 찾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과연 코미디에 중요한 일일까? 나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웃음' 그 자체라고 본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한참을 웃는다. 계속적은 실패로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그의 엉뚱한 행동은 웃음을 자아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한참을 박수치며 웃다가 무언가 씁쓸해진다. 정말 가슴한편이 아려온다. 그것은 왜 그런 것일까?

그건 이 영화 <모던 타임즈>의 첫장면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다. 분명 어제의 모습이였고 그제의 모습이며 오늘의 모습이고 내일의 모습인,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가는 모습과 사람들의 출근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 그 장면에서 기인하는 슬픔이다. 우리는 양과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그것이 같게 느껴지는 위화감을 느낀다. 그리고 분명 달라야 된다고 굳게 믿는 양과 사람이 별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다. 채플린은 그저 그 차이를 조금 더 모를 뿐이다.

한참을 웃다 그걸 깨닫는다. '으이구, 저 멍청한 놈을 보게나'하고 혀를 차다 그걸 깨닫는다. 저건 다름아닌 우리의 모습아닌가? 기계에 묻혀 숨쉴 틈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데도 그 고리 안으로 편입하지 못하면 입에 풀칠도 못하는 세상. 그것이 지금 작금의 우리가 아닌가?

2. 바로 결말..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의 모습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정말 무엇을 말해야 세상이 바뀌나, 어떻게 행동해야 미군이 자신들이 결코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시혜적 차원에서 범죄를 저지르고도 떳떳할 수 있는 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태를 바꾸나, 이런 고민들을 하기에도 벅찬데 세상의 잔혹함을 그저 눈뜨고 보고 이야기하는 것 그건 참 지긋지긋한 일이다.

그렇다고 어디에선가 떨어진 깃발을 들고 대열에 합류하기도 싫다. 그런 사람들은 돈을 벌지도 못할 뿐더러 밥굶기 쉽상이다. 자, 그런데 어째야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채플린은 길잃은 소녀에게 말한다. 절대로 죽는다는 소리를 하지 말고 웃으며 가자고. 웃으며 그 먼길을 가다보면 무언가 생긴다는.

그렇다. 채플린에게 있어서 코미디는 돈을 벌려는 도구도 아니였고 무대에 서는 것이 좋아서 하는 습관적 직업도 아니였다. 그가 웃음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편을 제시한 것이다. 웃으며 길을 걷자. 웃으며 살아가자.

사실 우리는 얼마나 따뜻한 환경에 놓여있는가? 아프리카의 수많은 기아들보다 따뜻하며 이주노동자들보다 얼마나 따뜻한가? 그리고 철조망 위쪽의 동포들보다 얼마나 따뜻하며, 미선이 효순이보다 얼마나 따뜻한가? 조금더 밝아보자. 광화문에 모이는 수만의 촛불처럼 조금은 밝아보자. 언젠가는 세상이 바뀌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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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즈> 비극론 - 박용하 (200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