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vs 세버

-안토니오 반데라스! 어설픈 007로 돌아오다-

아무생각이 필요 없다. 그저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난무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저 킬링 타임용으로 아니면 팝콘영화로 충분히 봐주면 된다. 생각을 필요로 하거나 영화를 본 뒤 주체 할 수 없는 감흥에 못 이겨 감상문을 쓴다는 등의 부담감도 없다. 그저 삼단논법의 논리적 사고 없이 스크린 속에서 비쳐지는 물리적 영상에 눈을 맡기면 된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주연의 영화 '엑스 vs 세버'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홍콩 느와르의 주윤발식 액션코드를 따라가고 있다.

FBI 전직 요원 엑스는 아내의 생존에 관한 정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괴사건과 살상무기 유입사건에 다시 투입된다. 용의자로 지목됐던 전 DIA 특수요원 세버는 엑스와의 몇 차례의 혈투 끝에 오해를 풀고 진짜 범인을 찾으러 공조를 한다는 것이 중심내용이다. <미녀삼총사>를 통해 동양계 헐리웃 스타로 부상한 루시리우가 세버 역을 맡았고, 작년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오리지날 씬>에서 농도 짙은 남미의 남성미를 물씬 풍긴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엑스역으로 분장했다.

영화 <엑스 vs 세버> 기자시사회를 가는 필자의 발걸음은 그다지 무겁지가 않았다. 많은 부담도 없었고, 그저 스포츠경기를 관람하는 느낌이었다. 이는 분명 영화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해서가 아니다. 최근 세계 영화의 추세가 관객의 입맛에 맞춰 다소 반전이나 좀더 색다른 형식과 소재의 영화를 찾기에 이런 전통액션영화의 포맷은 근래에 보기 드문 형태다.

현재 한국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첩보영화의 대표적 영화로 <007>에서 보여지는 첨단장비의 무기도 이 영화에서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키만큼이나 큰 총을 들고, 오토바이와 차가 전부이다.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보면서 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총격 신을 통해 문득 그의 전작인 1995년도 작품 <데스페라도>가 생각이 났다. 긴 늘어진 머리카락에 총 하나를 들고 고뇌에 잠긴 그의 모습이 7년 후인 지금은 꽤나 노쇄해 졌다는 생각이 든다.

1999년도 작품인 <플레이 잇 투더 본>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같이 호흡을 맞췄던 루시리우는 이번 작품에서도 그와 다시 한번 조우를 한다. <페이백>과 <상하이눈> <미녀삼총사>등에서 액션연기를 펼친 그녀가 이번 작품 때문에 그 동안 계속 액션연기를 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초반 액션연기에서 <매트릭스>에서 연상되는 모습은 조금 고개를 떨구게 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을 조금은 주목하고 싶다. 이번 작품은 어쩌면 헐리웃에 진출한 1호 작품이기 때문에 자기의 역량을 100%발휘하지 않았다고 본다. 태국출신의 카오스라는 감독인데 1998년 라는 저 예산 영화로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인정을 받았다. 28살의 나이에 그의 다음작품에 조금은 기대를 걸어본다.

이 영화 속에서는 FBI나 DIA와 같은 정보 보완기구를 등장시켜 그들의 집단적 이기주의나 존재 여부에 대한 회의를 부각시키려고 했으나 당초 주제에 맞게 살리지는 못했다. 특정 비밀 요원들의 고뇌와 시민의 안전에 대한 상관관계를 부각시키기에는 영화는 다소 단순 액션 쪽에 초점이 가버려졌다. 다만, 이 영화가 그러한 단순액션 개념으로 갔다면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개봉이 맞춰졌다면 흥행에 있어서 조금은 더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2월 13일 개봉한 이 영화는 소리소문도 없이 간판을 내려야 하는 불운을 겪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