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내가 <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 대해 쓸 말에 대해서. 별점 한 개도 아까워서 다른 평론에서 이 영화에 매겨져 있는 별점들을 모두 모아서 다시 원래 있던 하늘에 박아놓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심정에 대해서.

모처럼 관객과 평론가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매트릭스 마니아를 빼놓고 이 영화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2시간 18분 동안 '속았다'는 푸념을 늘어놓았고, 평론가들 역시 전작 <매트릭스>를 뛰어넘지 못한 졸작이라 평했다. 물론 이들이 비판하는 근거는 다르다. 관객들의 불만은 지루하면서 도대체 내용을 모르겠다는 것이고, 평론가들의 불만은 전편에 비해 유치하고 너무 상투적이라는 것이다. 모두 일리 있는 지적이고 나 역시 동의한다. 덧붙여 나는 이 영화가 '대작'이 되기 위해 기존의 다른 헐리우드 영화에서 수많은 차용을 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매트릭스>가 패기있는 시도였다면, <리로디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패기를 버리고 '성공의 관습'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영화를 스토리별로 삼등분해보면, 시온에서 보내는 달콤한 휴식이 1부, 고속도로 추격전이 있는 키메이커 구출기가 2부, 시온이냐 사랑이냐의 갈림길에 선 네오의 모험담을 3부로 나눌 수 있겠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이 1부를 무척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동의한다. 현실과 가상을 가로지르는 퍼즐식 재미는 사라지고, 영화는 <스타워즈>가 되려 한다. 그래서 짧은 러닝타임 안에 군중들을 억지로 구겨넣으며 영화에 동기를 부여하려 한다. 하지만, 너무 뜬금없다. 언제부터 <매트릭스>가 대중심리 혹은 대중선동 영화가 되었는지 영 찝찝할 뿐이다. 이 설정을 <스타워즈 에피소드 2>와 비교해보라. '시온'은 '나부' 행성이고, 네오와 트리니티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아미달라 여왕이며, 상원에서 연설하는 의원은 대중에게 연설하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성공의 신화인 <스타워즈>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너무 겁을 먹고 있는 것 아닌가. 혹은 대다수 미국인이 '존경'해 마지 않는 <스타워즈>의 아류가 되고 싶었던 것인가. 왜 스스로 <매트릭스>를 평가절하시키는가?

초반부에서 영화는 가족을 끌어들인다. 전작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한다. 헐리우드 영화 성공의 제1의 법칙인 '가족'을 끌어들임으로서 영화는 블록버스터로서 안전판을 마련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도대체 어떤 관객이 <매트릭스>를 보면서 '안전' 따위를 기대했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네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은 더 직접적이 되었다. 영화 초반부에서 그들은 이것이 에로틱 코미디가 아닐까 할 정도로 눈을 맞춘다. 시온의 군중들이 집단 댄스를 추는 장면에서는 묘한 에로틱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이것은 감독이 원하는 사회가 집단난교가 성행하던 원시공동체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 영화가 좀더 열린 영화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수위는 거기에서 딱 조절된다.

자, 그렇다면 이 영화에 인용된 헐리우드의 성공작들을 한 번 훑어볼까?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네이터 2>, <백투더 퓨처 2>, <수퍼맨>, <와호장룡>, <제5원소>, 그리고 물론 <스타워즈>. 이쯤되면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이 보이지 않는가? 전편에서는 사무실이나 가상공간, 지하철 등 막힌 공간에서 숨가쁘게 전개되던 것들이 여기에서는 좀더 열린 공간으로 나왔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 <터미네이터>를 생각해보라. 전편에서 승용차였던 것이 트레일러로 바뀌었고, 공장 근처에서 벌어지던 것이 뜨거운 용광로로 바뀌었고, 또 자동차 추격씬의 스케일이 엄청나게 커졌었다. <매트릭스>도 마찬가지다. 스케일을 늘리기 위해 고속도로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차가 부서지고 속도감이 느껴져야 사람들은 영화가 커졌다고 생각한다. 한편 <백 투더 퓨처>의 속편은 애초에 3부작으로 구성되어 2편에서 3편을 예고하며 끝났다. 영악하게도 <리로디드> 역시 <레볼루션>을 보고 나서 평가하라는 식의 전략을 세우고 있다. <레볼루션>을 과연 어떻게 만들었기에 그렇게 자신 있는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상관 없는 것일까? <리로디드>에 실망한 관객이라도 다시 <레볼루션>을 찾을 거라는 예상은 아마도 맞을 것이다. 이미 1편을 통해 형성된 높은 기대치가 실망스런 2편에도 불구하고 3편까지는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레볼루션>이 형편없다면 <매트릭스> 시리즈는 금방 잊혀질 것이 틀림없다.

<리로디드>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부조화'에 있다.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별로 없다. 플롯 따로 현학적인 대사 따로 액션 장면 따로 CG 따로, 전부 따로 논다. 스토리 안에 대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니 대화 장면은 하염없이 길어질 뿐이고, 결투 장면의 마지막에는 꼭 수퍼맨처럼 하늘로 솟아오르는 네오가 있다. 여자에게 케잌을 먹이는 장면과 네오가 트리니티를 살리는 장면에서 사용된 CG는 얼마나 뜬금 없는가. 웃음도 안나온다. 물론 창작자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공각기동대>의 이미지를 빌려따와 만화책으로 구성하려 했던 <매트릭스>는 엄청나게 히트했고 그 패로디는 온갖 광고에까지 쓰이게 되었으니 속편은 굉장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 부담이 너무 컸던 탓일까? <리로디드>는 소문난 잔치에 음식은 많은데 먹을 만한 게 없는 격이다. 수많은 현란한 액션씬은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봤던 것이라서인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수퍼맨이 된 네오에게는 더이상 감정이입조차 되지 않는다. 전편에서 구원자 개념을 내세워 기독교적 성향을 강조했었는데 속편에서는 아예 기독교적 음악까지 가세시켰다. 크리스찬 록 밴드 P.O.D가 주제곡을 맡았다. 네오는 이제 아예 신이 된 것 같다(물론 후반부에 전지전능한 줄 알았던 네오에게도 갈등이 찾아오긴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새로운 인물들은 거의 수박 겉핥기 식이어서 왜 그런 이름이 필요한지 궁금하다. '선택', '통제', '목적'에 관한 담론이 인물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데 거의 말장난에 가깝다. 전편에서는 인물들이 철학적인 개념을 설명해준 적 없었으면서도 철학적 텍스트로 이용되었던 것과 달리 속편은 이것을 매우 의식한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 개념을 단순히 표피적으로 읽은 것처럼 보인다. 뭐 혹자는 이것을 쿨하다고 느낄 지도 모르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지금 다시 논하기에는 이미 철지난 개념이 아닌가 싶다.

물론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이나 <엔터 더 매트릭스>에서 <리로디드>에 나오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스토리를 병렬적으로 확장시키는 전략은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새로운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동명 게임의 주인공으로 사용될 수 없었지만(게임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은 마이클 빈이었다), <엔터 더 매트릭스>에서는 영화와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오베와 고스트가 전격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캐릭터 무비가 가야 할 앞으로의 길을 예견하는 것인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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