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2 리로디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불편한 건 이게 하나의 독립된 영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려면 곧 개봉될 [매트릭스 3 레볼루션]을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물론 그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이 영화의 정보들을 검토하고 가설을 세우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군요. 여기서 전 기초적인 것들만 몇 개 언급하고 나머지는 3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영화는 [매트릭스] 버전 [제국의 역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이 이야기도 점점 [스타워즈] 3부작을 닮아갑니다. 하긴 설정부터 그렇죠.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저항군의 반란을 다룬 SF니까 말이에요.

영화는 [애니 매트릭스]의 [오시리스 최후의 비행]에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A.I.들이 시온 침공 준비 중이라는 오시리스호의 메시지를 받은 시온의 저항군들은 기계들과의 마지막 한판 대결을 준비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네오와 일당들은 가상 현실 속에서 이 모든 난장판을 끝내기 위한 모험을 하고요.

1편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다루는 주제에서 약간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전편은 인식론에 대한 영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접하는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자유의지와 인과율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는 일이 사실은 우리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덕택에 여전히 영화는 할 말이 많습니다. 두 캐릭터들이 마주 서거나 앉아서 관념적인 주제에 대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요. 아니, 대부분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설명입니다.

영화는 전편보다 액션과 설명의 구별이 뚜렷한 편입니다. 인식론 문제야 이런 종류의 가상 현실 장르 자체에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지만, 자유의지와 인과율의 주제는 조금 더 토론이 필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영화는 [매트릭스]식 요란한 액션과 얌전한 대화 장면을 번갈아가며 진행하는데, 그 때문에 전편보다 더 게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액션과 스타일은 우리가 기대했던 그대로입니다. 전편의 신선함을 찾아볼 수는 없어요. 그런 걸 의도하지도 않았고요. 영화는 대신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스타일을 보다 세련되게 하고 새로운 특수 효과와 안무로 액션을 과장합니다. 이 액션 장면들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이 어느 쪽을 더 기대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전 유원지 롤러코스터 타는 것처럼 즐거웠답니다. 어디로 가는 지도 알았고 어떤 자극을 받을 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드레날린은 충분히 나왔단 말이죠.

영화는 [매트릭스]의 우주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린 시온의 도시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지 볼 수 있습니다. 도시풍의 쿨한 매트릭스와 스팀 펑크 풍의 시온이 주는 어긋난 느낌은 영화를 미학적으로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는 역시 관객들의 몫이지만요.

영화는 길고 장황하며 전편보다 자기 자신을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덕택에 액션 영화로서 꽤 늘어지는 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 무게와 허세의 정당성을 저울질하기 위해서는 역시 3편까지 봐야 합니다. 이 영화는 1편이 공들여 만들어놓은 신화를 반쯤 붕괴시켜놓고 끝나니까요.

기타등등

1. 점점 극장용 연속극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2. [매트릭스 2 리로디드]처럼 인종적으로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도 많지 않은 듯 하군요. 오히려 종종 백인들이 소수민족처럼 느껴질 정도잖아요.

3. 오라클 역의 글로리아 포스터는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찍는 도중 사망했습니다.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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