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기월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병구(신하균)에게 문제가 있다면 믿기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까지 불사한다는 것. 악덕 기업주 강사장(백윤식)이 지구 파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믿고 급기야 납치까지 하게 됩니다. 영문도 모르고 납치된 강사장은 각종 고문을 받으며 꾸미고 있는 음모를 실토해야 합니다. 병구는 개기월식으로 예정된 지구 파괴 음모가 있다고 확신하거든요. 과연 강사장, 아니 외계인의 음모는 밝혀질까요? 헌데, 그보다 먼저, 강사장이 외계인이 맞긴 하나요?

1.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포스터를 한번 보시길. 신하균의 음흉한 미소, 물파스 따위의 코믹적 소도구들, <엑스파일>보단 <맨 인 블랙>에 가까울 외계인들, 그리고 가당치도 않은 제목까지. <지구를 지켜라!>는 소재와 간략한 시놉만으로도 견적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선입견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에겐 무척 친절한 영화죠. 헌데, 이 영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요. <맨인블랙>식의 코믹터치가 예상될 법 한데 껍질을 벗겨보니 생각치도 못한 물건이 들어있더군요.

2. 웃고 싶을 때 눈물을, 울고 싶을 때 웃음을.

<지구를 지켜라>는 내용과 스타일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표면적으로 납치극과 블랙 코미디가, 안으로는 하드 고어의 신체 절단과 추리 수사물의 서스펜스가 뒤엉켜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개별 장르의 성질이 하나로 용해되어 있지 않고 개별 덩어리로 살아 있다는 점 이예요. 쉽게 말하면 코믹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감동 모드로 전환 되는 게 아니라 이질된 두 감정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거죠.

강사장의 고문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외계와 교신을 끊기위해 머리를 몽창 밀어 버린다거나, 때타올과 물파스로 고문을 하는 장면들은 일단 코믹한 장면이긴 합니다. 하지만 썩히 편한 웃음은 아니에요. 강사장에게 가하는 폭력들이 웃음 너머로 희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체 훼손의 폭력이 남아있으니 막상 웃긴 웃었었는데도 개운하지 않은거죠.

비슷한 장면으로, 강사장이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지하실을 활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탈출 과정의 서스펜스는 강사장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때문에 긴장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요. 병구의 일기를 통해 모든 비극의 시작이 강사장 이란 게 밝혀지는 대목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사장의 비통해 하는 행동과 장엄한 음악은 관객들에게 바로 이 시점에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노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시울이 시큰거리는 가운데서도 큭큭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요.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여부가 갈리는 지점이 바로 이곳일 거예요. 이런 낯선 재미들은 아직 우리 영화계에서 (어쩌면 전 지구적으로도...) 실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대중과의 타협점을 얻기 마련이죠. 하지만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해도 <지구를 지켜라>의 독특한 재미를 지지하고 싶군요.

3.배우들

<지구를 지켜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 가는 영화입니다. 공간이 한정될수록, 사건이 공간에 갇혀 있을수록 관건은 캐릭터의 활용 범위입니다. 그만큼 병구와 강사장 캐릭터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거죠. <지구를 지켜라>에 대한 평가가 갈려진다해도 두 배우의 연기에 관해선 이의가 없을 거예요.

미개척지에 깃발을 꼽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정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보단 개척되지 않은 땅을 불모지라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들은 새로운 무엇보다는 안정된 지금을 선호할 뿐 입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조폭과 멜로만으로 안주하려는 우리 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영화입니다. 비록 <맨 인 블랙>식의 세련된 웃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 트럭분의 <맨인 블랙>이 와도 바꾸고 싶지 않군요. ^^ <★★★★>


TIP

●● 영화 내내 신하균을 오빠라고 부르던 황정민(B)은 실제로 신하균보다 5살이 더 많은 누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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