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정신의 세계와 티벳의 불교문화, 그리고 바즈라야나의 소설과 같은 정신 수양의 삶과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한 티벳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라는 하나의 인격 수양체가 갖는 그 커다란 국가적 의미와 티벳 국민들의 종교적 신의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쿤둔(KUNDUN)이라는 낯선 어감이 가져다주는 그 이질감에 대하여 같은 동양권에 인접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토록 생경해 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이 영화의 환생이 시작된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서거 후 섭정 중이던 레팅 린포체는 자신의 꿈속에서 환영(幻影)을 보고 그 이끌림에 국경지대까지 어린 쿤둔을 찾아 나선다. 그 후 18살에 신탁 의식을 치른 후 달라이 라마는 비로소 진정한 티벳의 쿤둔이 된다. 그러나 중국과의 불안한 관계로 인하여 신탁을 앞당긴 이 후 중국 당국은 노골적으로 어린 쿤둔에게 복속국으로서 자세를 강요당한다. 이에 불복하는 달라이 라마를 암살하려는 중국측의 음모에 의해 달라이 라마는 어쩔 수 없는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오늘밤, 떠나라."라는 마지막 신탁의식의 주문과 함께.

1988년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를 만들면서 마틴 스콜세지는 서방세계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이미 성인의 위치에 기반하며 서방세계의 80%가 넘는 국가들의 신앙의 모태로 자리 잡았던 기독교와 카톨릭의 교리를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예수의 재림 부분에 재해석을 가했던 이유 때문 이였는데 그런 엄청난 파장에도 불구하고 스콜세지는 자신의 의지에 결연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 "쿤둔"에는 이 감독만의 색깔이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자신의 영화적 신의와 자만심, 그리고 뉴욕커 감독들의 공통적인 생산의 형태인 일상사에 대한 재잘거림 들이 빠져서 그런지 몰라도 영화는 달라이 라마의 세미다큐에 어울릴 법한 그만의 행동에 모든 것이 할애된 듯이 보였다. 물론 영화는 "쿤둔"이고 달라이 라마와 티벳의 역사다. 그러나 영화는 제 3자의 눈으로 만들어졌고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의 이름이 선연하게 타이틀롤을 장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작가적 내러티브는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이것은 장 자끄 아노가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에서 범했던 우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인데, 하인리히 하러의 원작에 근거한 이 영화는 후반부에 그려진 티벳의 불교문화와 현실에 대한 감독의 몰이해 때문에 단지 아름다운 풍광과 브래드 피트만을 즐기게 만들었던 신비주의 경향이 강한 소비주의 영화에 불과했던 탓이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그러한 비중을 너무나도 두려워했던 탓인지 장면 하나하나에 꽤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보면 달관하는 자세로 삶을 영위하는 달라이 라마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의도했는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며 티벳에서의 지혜의 바다를 얻고자 노력했던 서양의 수도사로 그의 이름이 붙여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티벳인들에게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다.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포함하고 있으며 생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 근간에는 경전에 나와있는 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탄트라 수행을 이루는 것이다. 티벳인들의 수행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불교 정신을 큰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고통뿐 아니라 우리가 빚지고 있는 다른 모든 이들의 고통을 소멸해야 불완전한 개인의 해탈이 완전하게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그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앙체계를 주재하고 관장하는 것이 달라이 라마다. 그 살아있는 신화의 전설의 근저에 다다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내면에 심리적인 변화의 동요가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달라이 라마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미 감독의 정신적인 스승이 되었기에 그러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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