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질 좋은 종이에다 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비단에다 쓴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몸위에 써 놓은 것이다. 이처럼 부드럽고 질 좋고, 아름다운 종이가 있을까... 늘 어릴때 부터 필로우 북 내용을 듣고 자라온 주인공이 점차 크면서 사회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한 사람의 몸을 빌어서 글로 남긴다.

처음엔 이렇다할 영문도 모른체 수동적인 생활상만을 늘어지게 배치하고 그것이 왜 그렇게 되어가는지도 모르다가 차츰... 영화는 주인공이 쓰는 결과론적 책 내용에 부합되며 끝을 맺는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자신 스스로 화가 출신답게 여기 영화에서도 색의 배치를 정교하게 하며 그 명성을 그대로 이어온다. 또 하나 편집의 새로운 특성을 내보이는데, 영화의 중간 중간 삽입되는 과거 표현은 처음엔 작은 화면으로 연출되다가 나중엔 큰화면을 다 덮으면서 현재의 사건을 과거로 묻히게 하거나 짧은 시간차를 두고 서 작은 화면이 일이 먼저 일어나면 나중에 큰 화면으로 그 사건이 다시 보여지는데... 내 생각엔 이런 구성이 주는 효과가 관객들에게 현재는 과거의 한 조각들이 모아져서 현재가 되는 거라는 인식을 준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연기자들의 과감한 노출 연기도 대단했다. (물론 화이트 처리하는 바람에 하나도 안 보이지만 ^^) 이 영화에서 온 몸이 종이라면 그 종이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사람의 몸도 한가지의 소품이 되겠지만, 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무형적인 존재가 아닌 처음으로 생각있는 인격적인 소품이라 하겠다. 그들로 전해지는 자신이 겪은 평생의 일상 생활 이야기 필로우 북, 총 13권짜리는 그렇게 완성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P.S : 필로우 북(Pillow Book)이란 옛 여성들이 베게 밑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일상 생활을 기록한 일기를 책으로 모은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