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서 임상수의 <눈물>이 속해있는 지점은 독특한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정도의 학원물 일색이었던 아이들 영화의 계보에 <장군의 아들>로부터 이어지는 조직-깡패영화의 컨벤션이 합쳐지면서 등장한 <비트>. 그리고 반대로 홍상수로부터 출발한 90년대 서구적 리얼리즘의 한국버전과 박광수적인 어떤 근엄함, 여기에 기존 학원물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등장하는 <세 친구>. 굳이 따지자면 그 두 영화의 교착지점에 <눈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소재적으로 <눈물>을 장선우의 <나쁜 영화>와 동류로 묶는 관습을 탈피하는 방법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나쁜 영화>와 그다지 관련이 없으며, 화술, 연출, 시선, 어떤 독창적인 면에서도 둘은 확연히 다르다. <나쁜 영화>가 스타일에 중점을 둔 형식파괴의 지점에 아이들을 두었다면, <눈물>은 아이들을 통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기존의 영화가 시장에서 소통하는 방법들을 의도적으로 파괴시키려 한다.

1. 네 친구

여기 네 친구가 있다. 한 놈은 생양아치고 한 년은 그의 깔이며, 또 한 놈은 머쓱한 멀대고, 또 한 년은 그의 수호여신이다. 가출소년, 소녀들인 이들은 술 팔고 몸 팔고 삐끼와 도둑질로 밥 먹고 산다. 가정불화로 집을 나온 녀석도 있지만 어떤 놈은 그냥 재미 없어서 집을 나왔다. 솔직히 이 바닥은 가출 경험이 없는 필자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다. 감독이 6개월 동안 구로동 일대를 훑어가며 사전조사한 세계. 김기덕의 <섬>에서 뭍의 사람이 그 여자의 인생관을 알기 어려운 것처럼 그 부류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눈물>의 아이들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그런 네 친구가 바다로 여행을 간다. "에게! 이게 바다야?"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바닷가의 강아지 옆에서 아이들은 모처럼 여유를 만끽한다. 네 친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지만 때로는 그들을 부럽게 쳐다보는 주유소의 아르바이트생과 그들에게 돈을 주는 아저씨, 담배 권하는 아버지 등을 만나기도 한다. 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 담배 한모금이다.

2. 질주하는 생양아치들

한국사회에서 10대들에게 바래지는 역할은 어떤 것일까? 또, 10대들이 바라는 것에 대한 사회의 화답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억압받는 '교육'과 '제도'의 문제가 그것이었다면, 이제 슬슬 그 중심이 옮겨올 때도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 교육의 문제는 심각하고 매년 대학입시 때만 되면 일류대 논쟁이 한창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슬슬 아이들의 의식 속에서 '대학'의 무게중심이 가벼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사실 인간은 성인이 되는 19세 전까지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에 걸맞는 권리 역시 주어지지 않는다. 성숙하지 못한 인간이라 규정된 그 나이까지 10대들은 그저 사회 시스템을 교육받고 살아가기로 약속된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10대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이 성숙하지 못한 존재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같은 것만 반복해서 배우는 이들에게 교육은 실속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교육제도를 거부하기에는 사회생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교육제도에 싫증난 아이들은 교육을 벗어난 자유를 갖지 못한 채 그곳을 빠져나온다. 적절한 사회생활을 배우지 못한 10대들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삐걱거린다. 어른들이 '일탈'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그들은 맞부딪히게 된다. 복장이 이상하면 순식간에 생양아치라고 불리기 일쑤다. 원래 그렇게 살고자 한 것이 아니었지만,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는 이들에게 돌아갈 길도 서먹해지고 밥 먹고 살기도 정말 힘들어지면 이들은 거기에서 그렇게 주저앉는다.

한 번 사회 시스템을 등진 아이들이 다시 그 시스템으로 돌아오기는 무척 힘들다. 편견과 계급 등 너무 많은 보이지 않는 유형의 가치들이 우리 사회 공기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래의 사회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이 속한 또다른 사회를 개혁해가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그래서 두 사회가 융화되게 만드는 것이 더 나은 사회의 변증법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일 것이다. 쓰기 금지된 디스켓은 갖고 있는 내용만을 보존할 뿐이다. 이들에게 쓰기 금지택을 풀어주는 것보다는 새로운 디스켓에 저장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는 길이 더 중요하다.

3. 여기 우리 함께 그리고

동세대 아이들을 적나라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래리 클락의 <키즈> 정도가 이 영화의 참고서가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HIV 바이러스에 대한 우화였던 <키즈>는 아이들의 성생활과 AIDS의 공포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영화였다. 물론 <눈물>이 아이들의 성생활에 대해 말하려는 영화는 아니지만, 단순히 임상보고서의 수준에서 <키즈>는 <눈물>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을 법하다.

<눈물>은 <세 친구> 이후 오랜만에 또래 아이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 <세 친구>에서의 아이들이 의욕 없이 군대 빠지기 위해 애쓰고 겨우 사회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눈물>의 아이들은 즉흥적으로 막나가면서도 자기 생각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인다. 물론 두 영화의 분위기나 인물이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당사자인 아이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한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수확이 아닐 수 없다.


PS>
비록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하긴 했지만, <눈물>은 디지털 영화의 장점을 충분히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가벼운 카메라 움직임도 눈에 띄지 않고, 기존 영화와 특별히 '다른' 구석도 별로 없다. '비디오'라는 점에서는 필름보다 조명을 더 많이 사용해야 했을 것이므로 제작비 절감효과라는 말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좋은 화질을 얻어내기 위해 국내에서는 호환도 되지 않는 PAL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필름을 쓰지 않고 디지털을 감행한 것이 미련하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디지털을 사용한 흔적을 만끽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한 장면이다. 바닷가에서 강아지와 아이들을 바닥에서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그리고 그때 흐르는 문준호의 피아노 음악. 마치 데릭 자만이 <가든>에서 보여주었던 영상을 보고 듣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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