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심광진 / 출연 : 박중훈, 송윤아 / 배급 : (주)시네마서비스

작년에 나는 해를 넘기기 전에 '혼자 영화보러 가기'를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었다. 그런데 결국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해를 넘겼고 어느덧 2000년 12월이 되었다. 12월 어느날, 드디어 나는 해냈다. 다행이다. 작심한 것을 2년은 넘기진 않고 행할 수 있어서. 홀로 영화보기로 택한 작품은 '불후의 명작'. 그리 보고 싶어서 본 것은 아니었고 단지 다른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 선택한 영화였다. 그런데...

'미술관 옆 동물원'이 '불후의 명작'이 됐다. 상황설정만 조금 틀릴 뿐 두 남녀가 함께 풀어나가는 극중 극 형식이나 짝사랑 등은 거의 비슷한 구조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이 '미술관 옆 동물원'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토리의 뻔함이나 진부함 그리고 만화적 코드를 기저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보더라도, "평범한 삶,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우리 일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불후의 명작'" 이라는 멧시지를 전달하기에는 힘이 딸렸다.

바나나 우유, 만화, 시냇가, 반딧불... 이 모두가 이 영화가 포함하고 있는 순정만화적 코드들이다. 모래요정 바람돌이와 캔디 이야기를 하며 인물들의 순박함을 보여주려 한다. 허나, 인물들이 순박한 것은 알겠는데 어려운 상황이나 이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처세에는 그리 공감을 할 수가 없다. 깊이 있게 풀어내지 못하고 에피소드의 나열에 불과한 듯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카메라 워크 역시 기교를 부리려고 한 의도가 너무 역력히 드러나 부자연스러웠다.

주인공 '인기'는 유학까지 갔다와서(도중하차 했지만) 에로비디오 감독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옷 안벗기는 영화'가 제대로 된 영화라고 생각하는 그. 이것 역시 인기라는 인물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캐릭터 설정이다.

'불후의 명작'은 '사랑'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두 축으로 진행되지만 '열정'에 좀 더 비중을 두고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물이 고난에 대처하는 모습이 너무 가볍게 그려져 그 열정은 반감되어 버린다. 시나리오상에서 인기와 여경이 쓴 시나리오가 결국 선배 명준에게 맡겨지자 해외로 떠 버리는 것으로 처리한 것은 너무 안일한 처리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면에서도 주연과 조연간 편차가 너무 심해 더욱 이 영화를 더욱 어설퍼 보이게 만들었다. 주연들은 홀로 심각하다. 조연들과 융화되면서 극 전체에서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데 조연들은 소품에 불과해 보였다. 주연배우도 관록이 있는 박중훈 보다도 송윤아의 연기가 더욱 빛났다. 특히 술집 장면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연기가 압권이었는데, 맹물만 마시고 연기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이 되기엔 분명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여운이 조금은 남아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순정만화적 요소'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을동화적' 요소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랑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때로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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