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한 사이코 기질의 영화로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고 있는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 <떼시스>로 은밀히 자국 영화 시장의 협소함을 피력하고 <디 아더스>로 미국 영화계에 진출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오픈 유어 아이즈>. 이 두 독특한 영화들은 인간의 아주 재미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실적응’ 혹은 ‘현실인정’. 아, 이 얼마나 빈티 나는 언어 구사력인가. 나 역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독서를 게을리 했기에 이제와 후회하는 것이 아닐는지. .

나는 최근 6개월간 매일 비디오만 보며 놀다시피 했다. 집밖에 나가는 것이라고는 3분 거리의 비디오 가게에 가거나 5분 거리의 피씨방에 가는 것이 전부다 보니 6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10kg이 늘었다. 몸에 뭔가가 더 붙으면 득이 돼야 할 것 같은데 남들은 안 좋다고 하니 확실히 6개월 동안 10kg만큼의 손해를 봤다. 하지만 되찾은 것도 있다. 이름하야 ‘인간 우습게 보기’ 학교를 다닐 때는 워낙 피곤해 여러 가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는데 요즘 너무 여유롭다보니, 살아서 말을 하고 심지어 개기기 까지 하는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나는 세상에서 손에 꼽힐 만큼 무식하고 멍청한 바보라고 생각하는데(정말! 맹세코!) 재밌는 것은 그런 내게도 우습게 보이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위의 두 영화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

<엑시스텐즈>는 게임 속의 게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의 머리는 아주 산만해서 전후좌우를 구분하지 않고 활발히 신경을 써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심지어 땅에 발을 대고 서있고 자신이 서있다는 것을 보고 있는 자신조차 의심하게 된다. 왜 있잖은가. . 장자의 나비 이야기. 아무튼, <엑시스텐즈>는 아주 뻔한 결말을 목적지로 택하고 개성있는 이야기들로 달려간다. 주인공들은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게임에서 게임같지 않은 게임을 즐기다가 밖으로 나오면 거기가 게임 속인지 진짜 현실 세계로 돌아왔는지 헛갈리게 된다. 아니, 관객을 헛갈리게 한다.

<오픈 유어 아이즈>는 꿈속의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속 주인공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깨어있는 것인지 헛갈리게 되며 심지어는 이 꿈이 실제 꿈인지 만들어진 꿈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구와 뭐뭐뭐’ 시리즈 중 강시인지 드라큘라인지가 나오는 영화의 마지막처럼 ‘열린 형식’으로 끝맺는다. ‘열린 형식’인지 ‘책임 안 지고 끝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게 ‘열린 형식’이라면 <엑시스텐즈>도 열린 형식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냥. . 복잡하니 여기에서는 두 영화를 ‘열린 결말’을 갖고 있다고 해두자.

내가 특정 인간들을 보며 우습다고 생각할 때 중 하나는 그들이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의 상황을 모를 때인 것 같다. 나는 인간이란 모든 면에서 죽을 때까지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생각과 행동은 물론이며 키가 작아지면 작아짐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유치하다. 그리고 그것을 뒤늦게 성장해서야 깨닫는다. (이 말에 ‘유치함으로의 성장은 없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른쪽 상단에 있는 X를 누르라’라고 말하련다. 난 원래 대책 없는 인간이다.) 누군가 유치하다면 어느 누군가는 유치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 유치함이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있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아무튼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비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치함이란 것은 자신의 상황(현실의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안타깝고 슬프게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인간을 중심으로 보면 <엑시스텐즈>가 게임 속의 게임에 있는 인간들이 자신의 상황을 눈치채고, 혹은 못 채고의 상황을 역이용해 관객에게 전가하고 인간들의 모호함보다 영화의 형식미로 승부를 봤다면 <오픈 유어 아이즈>는 인간들의 모호함이 관객의 상황보다 더 중요하게 다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은 지금 앞뒤가 안 맞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자신을 모르고 그 상황을 모르는 인간이 우습다면 분명 위의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이 우스워야 할 터인데 절대 그들이 우습지 않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이 우습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더더욱 우습지 않다. 오히려 불쌍해보이기 까지 한다. <오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은 굉장히 괴로워한다. 안타깝게도 그를 보는 관객조차 꿈과 현실을 구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영화 속 주인공이나 그를 보는 관객이나 그 인간이 그 인간인 것이다. 이 영화는 관객이 전능하지 못하다. 아메나바르 감독은 관객이 전능하지 못하도록 주인공과 관객을 동일한 위치에 놓아두고 있다. 자신의 현실을 모르고 괴로워하는 인간이 우습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데다 내가 그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입장이기에 이 영화속 주인공은 우습지 않다.

하지만 <엑시스텐즈>의 두 주인공은 꽤나 거만하다. <오픈 유어 아이즈>가 목숨을 건 꿈이었다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있는 게임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게임 속에서 사랑까지 나누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하게 될 거란 걸 예감하게 되면서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그 게임을 중단하려는 노력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이 영화의 형식에 필요한 하나의 트릭이다.) 자신의 현실과 상황을 모르고 까부는 인간은 우습지만 두려워하면서도 즐기는 듯 보이는 인간들에겐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땀 한 방울 흘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 <오픈 유어 아이즈>는 인간을 보게 되고 이 영화는 ‘영화’ 그 자체를 보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 대 영화’도 아니고. . 아무튼 두 영화가 비슷한 상황에서의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제의 인간과 영화 속의 인간이 어떤 식으로 다른 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어떤 면에서든 현실의 인간이 더 웃기고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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