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19

두 남녀의 만남, 이제 막 시작되려는 '순애보'가 엔딩이 되는 영화는 서울과 도쿄의 지리멸렬한 삶을 그렸다.

살아가는 일이, 붙박이장 옷걸이 같은 우인과 아야. 일탈을 꿈꿔보지만 실현되지 않거나 혹은 못한다.

동사무소 공무원 우인. 무료한 일상 속에 미아에게 호감을 표하지만 그녀는 냉담하다. 재수생 아야. 단조로운 삶 속에서 죽음만이 위안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죽기 위해 인터넷 모델로 나선다.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이들의 사랑 키우기를 이지적으로 그린 <순애보>는 <정사>와 <러브레터>의 감성을 반영한다. <정사>의 감성은 이재용 감독 스타일이라면 <러브레터>는 일본과 한국의 공통적인 정서, 즉 안전한 흥행코드를 갖추기 위한 보완장치 같은 것이다.

그래서 형성된 본격적 한일합작 영화 <순애보>는 작은 일상들의 연결을 통해 인물이 살아나고 숨쉬는 독특한 내러티브 구조를 취한다. 하지만 <정사>와 <러브레터>의 그 어디쯤 있어서 그럴까, 이들의 우울함은 깊이가 느껴지지 않고 이들의 만남조차 살 떨리지 않는다.

우인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야를 알게되고, 아야를 사랑한다. 우인과 아야 사이에 가로놓인 인터넷은 사랑을 키워가는 데 장애가 되기는커녕 커다란 동력이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순애보>는 이것과 정 반대의 길을 걷는다. 관객은, 혹은 영화보는 '나'는 스크린을 통해 감독과 대화하지 못하고, 감독의 사랑을 전달받지 못한다.

지나치게 말끔하게 표백된 일상은 환타지조차 주지 않아서 끝모를 깊이와 환영에 시달리는 현실을 잊게 만들지 않을 뿐아니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조차 전달하지 않는다.

결국 감독과 관객이 만들어 가는 '순애보'는 불발로 끝난다.

무미건조한 영화가 감동을 덜 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인물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동력, 삶을 바라보는 시선보다 훨씬 밑바탕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 영화에는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지나치게 자신을 숨기거나 자만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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