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15

이제 스산한 가을이다. 괜히 마음이 울쩍해지거나 쓸쓸함에 몸이 떨릴 그런 날들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지나간 사랑을 떠올릴 여유를 주지 않고 혹은 갖지 못하고, 부질없는 시간들만 죽이는 것이 현실이다.

꿈꾸고 싶은, 욕망에 대한 환타지를 표현하는 것이 영화라면 이 가을, 사랑에 관한 멜로드라마가 유난히 많은 것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불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은 현실로 전화가능 하지만 어떤 것은 영원히 영화 속에서만 이뤄지는 그 불연속성이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위노나 라이더와 리차드 기어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현실불가능한 프로젝트, 환타지 자체가 되버린 <뉴욕의 가을>은 그런 면에서 '몽유병'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뉴욕의 가을>이 너무 밋밋하다는게 대체적인 평이다. 여성 감독 조안 첸의 독특한 시각도 부재하고 미장센도 특별할 것이 없으며 내러티브는 너무 고답적이라 세간의 평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몽유병'에 초점을 맞춰 본다면 <뉴욕의 가을>은 내러티브에 초점을 둔 영화가 아니다. 화면 분할 등 나머지 미장센은 다 제외하고 하나의 미장센, '뉴욕의 가을'에 무게중심이 실린 영화다. 위노라 라이더와 리차드 기어는 '뉴욕의 가을'을 위한 보조 연출에 불과하다.

멜로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가 좋은 점은 일정정도 미화되긴 했지만 일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뉴욕의 가을>은 일상이 부재한다. 인물들은 현실의 부피와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는 그 가을과 가을의 정경이 이 영화의 전부로 자리한다.

그래서 영화는 인물들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더욱 공허함을 심어준다. 영화가 우울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위노라 라이더의 죽음이라기 보다 존재한 공간의 존재감 부재 때문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를 지니고 영화를 만들었건 <뉴욕의 가을>은 존재감의 부재, 부재한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느낄 수 있는 온통 잡스런 감정들이 영화의 뒷면에 서려 있다. <뉴욕의 가을>은 의미의 표면에서 부유하는 어떤 것을 무의식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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