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공식 사이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장자의 '호접몽'과 [금강경]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입니다. 벌써부터 하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전에도 말했죠? 누군가가 가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호접몽에 대한 언급을 한 문장 이상 한다면 그 사람은 장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고요.

오늘 시사회에서 진행자가 되풀이한 멘트 역시 불길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엔 "...식으로 보지 말아주세요."라는 멘트가 세 번이나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반복되었습니다. 영화를 소개하기도 전에 진행자가 변명부터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겠죠.

그래서 조금 미심쩍은 기분으로 영화를 봤는데, 예상이 대충 맞았습니다. 위에 언급한 두 불길한 징조는 그대로 영화에 연결되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도 줄거리는 다들 아실 겁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게임 이야기입니다. 중국집 배달부인 우리의 주인공 주는 어쩌다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고약한 게임에 말려들게 되는데, 그 게임의 목표는 주인공 성냥팔이소녀(사실은 라이터팔이 소녀지만)를 동화의 결말에 맞게 얼어죽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는 게임을 하다가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소녀를 구하려 뛰게 되지요. 그러다 버그를 일으킨 성냥팔이 소녀는 주에게서 훔친 기관총을 들고 시내로 나가 사람들에게 쏴대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현실 세계와 게임 속 세계의 경계는 비교적 불투명한 편인데, 거기에 시시콜콜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신경 쓰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았고요. 영화에서 중요한 건...

...대답을 못하겠군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언급할 수 있을만큼 분명한 영화가 아닙니다. 마치 안개 너머로 무언가를 본 것처럼 영화 전체가 흐릿해요. 그렇다고 드뷔시의 음악이나 모네의 그림처럼, 작품이 유쾌한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는 그냥 흐릿할 뿐이에요. 스토리의 엔진이 되어야 할, 성냥팔이 소녀에 대한 주의 감정도 브로셔에 나와 있는 걸 봐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니 말 다했죠. 스토리 역시 모양이 잡혀 있는 편이 아니고요.

어느 정도 모양이 잡혀 있는 부분들도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꼭 테크닉의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스턴트의 질은 비교적 좋은 편이고, 특수 효과도 견딜만하니까요. 문제는 이 모든 게 징그러울 정도로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끝도 없이 반복되는 [매트릭스] 인용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패러디로 보자니 재미가 없고 그냥 인용으로 보자니 역시 지겹고 그렇다고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이런 엉성함에 어떤 구체적인 예술적 의도가 있는 걸까요? 아뇨, 제가 보기엔 그냥 엉성한 기획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장르물은 만들기 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만들려면 '예술영화'류보다 더 어렵죠. 정형시가 자유시보다 더 쓰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장르 경험이 전혀 없고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부족하면서 그 어려운 작업을 시 한 편과 막연한 심상만 가지고 접근하려 들었으니 사고가 나는 게 당연하죠.

영화가 그럭저럭 버티는 부분은 장선우가 '예술영화 감독'일 때입니다. 그가 불평쟁이 험담꾼일 때도 어느 정도 먹히는 것 같고요.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오는 동안 성냥팔이 소녀가 기독교 종교 집단의 예배당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쏴죽이는 장면 같은 건 특별히 새롭지는 않아도 그래도 좀 낫습니다. 그가 옛 유행가나 구식 액션 영화 성우의 목소리와 같은 낡은 문화 코드를 끌어들여와 가상 현실 액션물과 섞을 때도 조금은 이야기가 풀립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완전히 영화의 숨통을 뚫지는 못합니다. 그가 엉성하게 다루고 있는 장르가 덜컹거리며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일반 영화였다면 그럭저럭 분명한 주제로 살았을 '시스템에 대한 저항'도, 이런 식의 이야기가 수도 없이 반복된 장르 안에 들어가자 뻔하디 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현대의 부산 시내와 게임 세계의 환상성이 충돌하며 만들어낼 수 있었던 초현실주의 역시, 장르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바람에 주춤하고 말았고요.

배우들은 어떠냐고요? 임은경은 외모 때문에 눈에 확 들어옵니다. 자기 역할도 하고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사람의 연기력을 확인할 생각은 하지 마시길. 영화 전체를 통해 이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몽유병자처럼 멍한 표정으로 걸어다니는 게 전부니까요. 다른 배우들은... 라라로 나왔던 진싱을 제외하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군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커다란 야심과 부족한 준비가 춤추며 만들어낸 실패작입니다. '실패작'이라는 말은 좀 야박하게 들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 영화가 가장 중요한 목표 하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별로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거든요.

기타등등

시사회는 서울 극장 2관에서 했답니다. 예고편은 2.35:1이더군요. 당연히 원래 화면 비율을 못 살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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