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4

삶을 바라보는 힘... 영화라는 그릇과 그것을 채우는 알맹이...
영상화되어진 소설... 영화인들이여... 부끄러워하라...

감독: 이창동
출연: 한석규, 문성근, 심혜진

작년 36회 대종상 시상식의 노른자위는 모두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의 몫이었다. 그의 시나리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이었고 전체적으로 볼 때 pre-production 단계에서만 10년 가까이의 시간이 소요되어진 작품이었다. 이광모 감독에게는 유장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이미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데뷔작인 <아름다운 시절>은 실제로 그에게 있어서 처녀작이라기 보다는 오랜 시간 고민해온 문제에 대한 영화적인 표현이자, 영화라는 그릇을 채울 우려내고 우려낸 알맹이들의 모임이었다. 그리고, 다시 올해 대종상은 이창동 감독에게 감독상과 작품상, 그리고 각본상을 건네준다.

단 두 작품만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 중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자신의 주관을 가진 작가로서 자신을 증명해 보인 이창동 감독은 부끄럽게도 소설가 출신이다. 그가 소설가 출신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현재 영화를 만드는 어떤 이보다도 영화는 무언가를 담을 훌륭한 빈 그릇이며, 자신은 거기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지만, 그의 영화는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는 하고 싶은 주제가 있고, 그것을 이야기로서, 플롯으로서 완벽하게 완성시킬 수 있는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있다. 그러나, 그의 두 편의 영화는 영화적인 영화가 아니다.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통합된 시나리오는 이미 비대해진 충무로에 유일하게 메말라 있는 요소이며 결코 단 한번도 풍요롭게 채워진 적이 없었다. 그는 영화에 담을 내용물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만드는 영화는 영상화되어진 이창동의 소설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히려 지나친 카메라에 대한 자각이 만들어낸 방정맞은 현란함에 비해 그러한 그의 영화는 소박함이라는 또 하나의 스타일을 빚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드라마이다. 그것은 영화와는 차별되는 개념이다. 화면이 이야기를 위해서 봉사할 때의 그 극단적인 예를 이와이 순지의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기성 감독들 중에서 임권택 감독은 칸에 입성한 최초의 한국 감독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전략적 선택이 거둔 중대한 성공이다. 헝가리의 미클로스 얀초나 폴란드의 안제이 바이다, 혹은 유고의 에밀 쿠스트리차가 칸과 베니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그리고 중국 5세대 감독이 특히 베를린에서 환영받는 이유는 그들의 영화가 다루는 서구적인 시점에서 볼 때의 소재의 특이함,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꽃의 언어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 영화가 칸에 입성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소재의 특이함에 비해 독특한 영화 스타일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스스로 자신이 <춘향뎐>에 현재의 판소리 장면을 편집해 넣은 것이 비동양계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나머지 영화인생을 한국적인 소재를 한국적인 영화 언어로 담아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바칠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는 역사로부터 멀어지고, 민족적 낭만주의에 몰입해간다. 작년 최고의 영화는 단연 박광수 감독의 <이재수의 난>이었다. 그것은 이광모 감독이 담아낸 한국 역사에 대한 유장한 해석을 또 다른 모습이었고, 현재의 감독들 중에서 그 둘만이 영화로서 역사를 고민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창동 감독의 위치가 문제되어진다.

그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힘이 있다. 그는 미장센에 의한 시각적 상징성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가 만들어내는 숏들 안에 보여지는 모든 인물들과 사물들은 오직 드라마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가 사용하는 유일한 상징인 박하사탕이 영화적으로는 진부해 보이는 이유는 그러한 상징이 근본적으로는 영상적인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두 편의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영화 지식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 출신인 그가 영화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결국 영화적인 것은 아니며, 그가 받고 있는 주목은 그의 스타일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내는 드라마 트루기의 유기성과 오랜 시간 다듬어진 인물과 삶을 바라보는 그만의 깊이있는 시선에서 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충무로가 끊임없이 목말라 하지만 결코 나타나지 않는 시선을 의미한다. 이창동감독의 존재는 거기에 있다. 그런 그가 국제적일 수 없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한국적인 감수성을 가진 한국의 감독이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 그와 비교할 때 오히려 영화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다.

이창동 감독은 끊임없이 과거와 가족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막동이가 그리워하던 산업화되어진 일산의 한켠에 모여살던 가족이나, 영호가 그리워하는 돌아가고 싶은 첫사랑의 기억은 그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정서의 핵심요소이다. 그는 <초록 물고기>에서는 산업화를 <박하사탕>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하지만, 냉정하게도 그의 시선은 분명한 한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하나의 영화 속에서 영화가 스스로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게 하기보다는, 한 개인의 차원에서 현실과 역사를 투영하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인 드라마 트루기의 방법인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박하사탕>은 80년대의 암흑기와, 80년의 광주를 이야기하면서도 힘들지 않다. 관객은 그냥 슬플 뿐이며, 그 슬픔의 이유를 알지 못한채 단지 설경구의 울부짓음속에서, 그의 눈빛속에서 찾으려 한다. 이창동 감독 자신이 말했듯이 <초록 물고기>에 비해 <박하사탕>이 관객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플롯이 극히 개인화되어진 기억의 파편을 쫓아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분명 헐리우드적인 상업전략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창동감독의 시선은 다행히도 개인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은 앞으로의 그의 영화들에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의 지금까지의 두 작품은 극히 개인화되어진 감정속에서 삶을 투영시키려고 하는 작업이었다. <박하사탕>에서 관객이 느끼는 슬픔은 개인화되어진 영호의 슬픔이지만, 그것은 곧 90년대를 사는 인물이 지난 20년간의 한국의 과거를 돌아볼 때 흐르는 눈물과 같다. 역사책을 펼쳐놓고, 지난 20년간의 신문지들을 펼쳐놓고 눈물로서 흘러내리지는 않지만 다가오는 아픔을 이창동 감독은 자신이 만든 플롯을 통해 비로소 눈물로서 전화시킨다. 그의 시선이 결코 헐리우드적인 것이 아니며, 그가 택한 전략이 단지 전략일 뿐이며, 그의 인식까지 변화시킬 수는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대사의 아픔을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해줄 때 강요해서는 결코 안된다. 내면에 쌓일 수 있도록, 그래서 자신의 가슴으로 아파할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그것은 또 한편의 역사 다큐멘타리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창동 감독은 이광모 감독이나 박광수 감독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절제는 주인공 영호에 대한 캐릭터 구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는 결코 동정받을 수 없지만, 속물적이고 파괴되어버린 그의 내면을 바라보며, 그리고 역사속에서 현실에 끊임없이 영압했던 비겁한 인물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시선이다. 그의 내면 깊숙히 숨겨진 역사에 대한 죄의식은 그의 분신인 영호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역사속의 또 한켠의 인물로서 그려질 수는 없게 만든다. 이창동 감독의 두 작품이 모두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내밀한 고백이며, 모두가 개인적인 것들인 듯 하면서도 결코 현실과 삶으로부터의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의 시나리오가 탁월한 이유는 그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에서 기인한다기 보다는 그가 가지는 삶에 대한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삶으로부터 자신이 짊어지게 된 질문들을 영화속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며, 지금 충무로에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이며, 자기고백적인 동시에 삶이 아름답다고 믿고 그 때문에 슬퍼하는 감독은 이창동감독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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