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젖은 와이키키

같은 여자라서 그런가..
내게 있어서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남들과 다르게 다가왔다.
임순례라는 감독에 대해서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고나 할까..
인터넷을 통하여 그의 단편 <우중산책>을 보고 나는 사실 적지 않이 실망을 했다. 우리나라 많은 단편영화의 감독들처럼 - 전부는 아니지만 - 관념적인 표현과 불편한 카메라 앵글, 그리고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서사구조 등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단편과 장편은 확실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더 보고 싶어 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제, 기대는 하지 않고 봤다. 다행히..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밴드의 삶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흔히 말하는 삼류 인생들의 이야기다.
그것도 영화에서 참 많이도 소재로 다뤘던 밴드들의 삶이다.
밴드의 리더인 성우가 가고싶지 않던 고향, 수안보로 어쩔 수 없이 내려가면서 그의 주변에 있는 현재의 사람들과 과거에 알았던, 혹은 과거 사람들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어 나간다.
어릴적, 밴드의 꿈을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가며 살아가는 리더 성우와 착하지만 조금은 의지가 약해 보이는 듯한 드러머 강수, 건들거리며 강수의 애인은 모두 뺏어(?)버리는 바람둥이 올갠 주자 정석.. 그리고 수안보로 가다가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 섹스폰 주자 현구, 바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멤버들이다.
그 외에 성우의 어릴 적 친구들 -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이름도 사실 어릴 때 만든 것이다 - 과의 재회가 이루어지면서 잠깐의, 어쩌면 주류인지도 모를 회상으로 영화는 이어진다.
지금은 약사며 시청 공무원, 그리고 환경 운동가가 되어 있는 현실속의 친구들..
또한 어릴 적 성우가 따라 다녔던 여자친구 인희는 이미 현실에 쪼들려 사는 그저 그런 억척 아줌마가 되어 버린 상황..
이 모든 현실이 성우에게 어릴 적 회상과 맞물리면서 묘한 괴리감마저 들게 한다.
전혀 어울려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속의 그들과 성우..
하지만 그들의 어릴 적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캐릭터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결론지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성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가기만 했다.
성우는 그저 이야기에 끌려 다니는 캐릭터가 아닐까..
왜 주인공이 확실히 다가오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이 영화속 주인공들이 모두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중이 적은 역이라도 이야기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도 감독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것일까..

나이트 클럽의 뮤직비디오

지금 현재 <친구> <신라의 달밤>등이 보여 주듯이 우리 영화의 현실은 추억을 소재로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크게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칠팔십 년대의 학창시절, 그 시절에 유행하던 대학 가요제때의 노래, 팝송, 그리고 해변에서의 낭만..
마치 어떤 유행처럼 추억은 그렇게 영화속에서 번져 나간다.
여기다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소재가 소재인 만큼 엄청난 양(?)의 음악을 선보인다. 마치 시대와 장르를 총 망라한 듯이, 마치 나이트 클럽 안에서 찍은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듯이 말이다.

슬라이드처럼

배우들의 움직임이 살아 있는 반면 거의 비슷한 앵글과 움직임이 둔화 된 듯한 촬영은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평면적인 그림 한 편을 접하게 한다. 이것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런 그림을 보여 줌으로서 감독은 관객들에게 추억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감동을 맛보게 했던 것일까..
여담이지만 화면에 잠깐 ** 정수기가 보이 길래 나는 속으로 '어?? 저건 저 시대에 없었을 텐데..' 했더니 그 때는 바로 현재였던 것이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편집이다.
사실 기술적인 부분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듯한 연결, 그리고 튀는 화면 구성들은 굳이 기술적으로 문외한일지라도 알아 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것도 추억을 가장(?) 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을까..?




어쨌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재밌는 영화다.
영화는 그렇게 현실과 회상을 적절하게 넘나들면서 나로 하여금 꿈과 현실의 고리를 이어 나가도록 도와 준다. 어쩌면 그저 그런 진부한 소재일 수도 있었던 것을 감독은 재치와 유머가 담긴 대사, 신나고 분위기 있는 음악들, 그리고 살아 있는 캐릭터들로 이야기의 지루함을 덜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반가운 영화다.
근래 보기 드물게 여성 감독이 움직였다는 것과 이것을 계기로 많은 여성 감독들이 움직인다는 것 또한 주목 할 만한 일이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과 배우, 스탭이 노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성공을 거둔다면 얼마나 좋을까..